전 대전보건환경연구원장

아들이 올해 몇이더라?
와~ 벌써 그렇게나! 언제 저렇게 나이배기가 됐지? 키 큰 줄은 알았지만 벌써 저렇게 믿음직스러운 어른이 되어있을 줄이야!
어르고 달랜 게 엊그제 같은데 든든함이 자리매김한 걸 보면 시간이 괜히 흐른 것은 아니야. 어느새 코흘리개 시절을 거쳐 얄개와 새내기 시절까지도 다 지나고 이젠 의무와 책임을 질 나이가 되었으니 그걸 아들이 잘 감당해 낼 수 있을까? 흔들리는 청춘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는 때가 되었으니 이젠 사자처럼 발톱을 드러내고 갈기를 세워 포효할 때가 되긴 된 거지.
이제까지는 물어다 주는 먹이만 받아먹으면 되었는데 지금부터는 날개가 다 자라 이소해야 하는 독수리처럼 아들만의 세상을 찾아가야겠지? 지금까지는 차곡차곡 쌓기만 한 것 같은데 세상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세상에 나간다는 건 자기가 할 일에 대해 책임질 나이가 되었다는 것인데 아들은 어느 세상 어느 지점까지 갈 수 있으려나! 하긴 자기 인생인데 남 인생처럼 준비야 했을라고.
인생은 누가 대신 살아줄 수 있는 게 아니란다. 뿌린 만큼 거둔다고는 하지만 뿌린 대로 다 돌려받는 세상도 아니란다. 독수리가 멀리 훨훨 날아갈 수 있음에도 날지 않으면 평생 울안에 갇혀 사는 닭들과 뭐가 다를까? 개미들이 열심히 노력할 때 베짱이처럼 놀았다면 나중에 베짱이의 대우를 받는 것은 당연한데 혹시 지금도 캥거루 주머니 속의 편안함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회로 나가는 관문은 크고도 넓단다. 그렇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문은 언제나 좁은 법이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남에게는 너그러운 것 같고 내게 만큼은 아주 냉혹하게 느껴지는 것이란다. 또 남들은 탄탄대로의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내가 가는 길은 가는 길마다 가시밭길이나 빙판길처럼 느껴지기도 하지.
아들은 지금이 그 시기란다. 세상은 전장이고 전쟁터란다. 사회생활은 서로 총칼만 들이대지 않았을 뿐 내가 상대를 이기지 못하면 내가 죽는 거와 다름이 없는 곳이란다. 그런데도 세상은 공평하다고들 말하지. 그렇지만 큰 뿔을 가진 소는 날카로운 이빨이 없고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호랑이는 큰 뿔이 없이 진화해 왔는데 그건 왜 그럴까? 친구끼리는 계급이 없을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서는 보이지 않는 서열이 생기고 멘토와 멘티가 자연스럽게 구성되기도 하지.
이긴 자는 말이 없단다.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은 늘 한 수가 모자란다고 변명을 늘어놓기 일쑤란다. 높은 산도 정상에 도달해 봐야 그 느낌을 알 수 있는 것인데 인내 부족 끈기 부족으로 중도에 포기하거나 끝까지 가보지를 못해서 성공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는 거란다. 정상이 바로 눈앞인데 그 힘든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이제까지의 노력이 허사가 되고 다 수포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지. 대충은 대충을 낳는 것처럼 아무리 노력했다 하더라도 마지막 매듭을 짓지 못하면 그것 또한 도루묵이 되는 거란다.
사람은 때가 있어 그 나이에 하지 못하면 평생 후회하며 사는 것들이 많이 있단다. 인생은 시절 시절마다 잠깐 치러진 결과로 남은 인생을 누리며 산다고도 볼 수 있지. 그 고비만 넘기면 신분 상승이 되는데 지금의 안일함에 안주하게 되면 평생을 그렇고 그렇게 살 수도 있는 거란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반열에 오르려면 뼈를 깎는 각오와 행동이 뒤따라야 하는데 지금도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막연한 그런 마음으로 사는 건 아닌지 모르겠구나. 물론 누구나 다 열심히 노력하고는 있지. 그런데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은 내 노력이 하늘에 닿지 않은 게 아니라 하늘이 내가 하는 결과를 절실하게 보고 있지 않음이 아닐까?
아들은 이제까지 아주 잘해왔고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잘해 낼 거지만 여기까지 버텨준 거 또다시 천 리 길을 가는 사람처럼 한 걸음 한 걸음씩 시작해 보려무나. 오늘도 파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