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지원조례 제정 1년 지났지만
단 한 차례의 실태조사조차 안해
올해말 예정 기초연구용역이 전부
제도 밖 대상자들과 접점 만들어
실효성 있는 지원 체계 마련해야

▲ 사진=챗GPT 제작

<속보>=대전시가 지난해 제정한 ‘위기임산부와 위기영아의 보호 및 지원 조례’는 법적 울타리 바깥에 놓인 생명을 제도적으로 감싸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그 약속은 여전히 실행 기반 없이 멈춰 있다. <본보 16일자 1면 등 보도>

한 해에도 누군가는 아이를 낳지만 그 출산은 보호로 이어지지 않는다. 실제 위기에 놓인 임산부와 영아가 제도의 시야에서 지워지고 있다는 게 지난해 초록우산 대전지역본부가 발간한 ‘영아권리관점에서 본 대전시 임신·출산·육아 정책 연구보고서’의 분석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관내 한부모가구 비율은 10.4%로 전국 평균(9.2%)보다 높다. 보호 필요성이 높은 집단이 밀집된 지역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이들 중 위기임산부 또는 위기영아 상태에 놓인 비율은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위기 상태의 현황조사나 보호계획 수립은 조례에 명시됐지만 시는 여태 단 한 차례의 실태조사도 진행하지 않았다. 현재까지의 대응은 올해 말까지 예정된 기초연구용역이 전부다.

실태 파악의 지연은 현장의 시간 감각과도 어긋난다. 초록우산의 연구 과정에서 실시된 초점집단면접(FGI) 사례는 위기임산부와 위기영아가 단순한 복지 대상이 아니라 응급 대응이 필요한 보호 대상으로 다뤄져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산전 진료를 단 한 번도 받지 못한 채 출산비용 전액을 감당하고 출생신고도 제대로 하지 못한 미등록 외국인 여성, 학교 복귀를 포기하고 양육공백에 고립된 청소년부모, 지속적인 사회적 낙인과 제도적 배제 속에서 의료·보육 모두에 접근하지 못하는 장애부모 등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제도가 존재함에도 접촉조차 이뤄지지 않았고 정책은 그 존재를 감지하지 못한 것이다.

그나마 작동하는 연계체계는 사실상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1308 위기임산부 상담전화가 유일하다. 1308은 전국 단위 지원체계로 대전세종지역상담기관을 통해 연결된다.

대전자모원 관계자는 “현장에서는 조례의 영향력보다는 중앙부처의 의지로 만들어진 1308 체계가 사각지대 위기임산부를 양지로 끌어내는 데 도움이 됐다. 밖으로 나온 위기임산부 지원은 시의 정책적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조례의 실질적인 효력이 발생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상담 연결 이후에도 실질적 지원은 제한적이다. 보호·지원 체계 자체가 취약해서다. 대전에 위기임산부 보호시설은 미혼모 중심의 한 곳뿐인데 기혼 여성이나 복합적 위기를 겪는 여성은 입소 기준조차 충족하지 못하고 사례관리와 연계, 장기적 돌봄지원 역시 민간기관의 자발성에 의존한다는 보고서의 분석이 그렇다. 상담과 보호, 연계 기능 대부분이 민간 현장에 전가돼 있다는 점에서 공공의 책임은 형식적으로만 존재하는 셈이다. 보고서는 대전 안에서 유기와 사망, 생계지원 수급 등 영아기 위험지표가 여전하다고 지적한다. 시 정책이 실효성 없는 구조에 머물러 있다는 진단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조례 실행 기반 구축과 맞물려 제도 밖 위기 대상자들과 만날 수 있는 접점을 시가 선제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래야 조례 제정의 의미가 현실에서 빛을 발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홍진주 한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책 제안이 모두 즉시 반영되기는 어렵지만 조례 제정 이후 단 하나의 시범사업조차 시작되지 않았다는 건 시와 대전시의회의 공동 책임이다. 조례를 만들 때 사업 실행까지 염두에 뒀어야 했다”라고 꼬집었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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