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국가자살예방전략’ 수립…자살률 10년내 40% 감축
지자체별 자살예방관 두고 범정부 자살대책추진본부 설치

이재명정부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자살’에 도전적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1만 4000명 수준인 자살자 수를 5년 내 1만 명 이하로 줄이고 이를 기초로 10만 명당 28.3명인 자살률을 2034년까지 17명 이하로 떨어뜨려 ‘OECD 자살률 1위’의 오명에서 벗어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심각한 현황
정부는 지난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김민석 총리 주재로 제9차 자살예방정책위원회를 열고 ‘2025 국가자살예방전략’을 공유하고 지자체를 포함한 범정부적 역점 과제로 추진하기로 했다. 이날 심의·의결된 자살예방전략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자살 사망자는 1만 4439명으로 하루 평균 39.6명이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셈이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2003년 이후 20년 넘게 OECD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면서 2011년 10만 명당 31.7명을 기록, 정점에 올라섰고 이후 2022년까지 하락세 흐름을 보이다 코로나19 이후 다시 우상향 흐름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자살률은 10만 명당 28.3명으로 OECD 평균(10.6명)의 2.3배에 달한다. 2위인 리투아니아(17.1명)와 비교해도 압도적이다.
특히 아동·청소년 자살률의 심화가 아프게 다가온다. 2023년 우리나라 10대 자살률은 7.9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근 1년간 중·고생의 27.7%가 우울감 경험이 있다고 답하는 등 청소년 정신건강 악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하락세 흐름이긴 하지만 노인자살률도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지역별(2023년 기준)로 살펴보면 충남 자살률이 29.4명으로 가장 높고 충북(28.6명), 울산(28.3명), 제주(27.3명), 강원(26명), 경북(25.8명) 등의 순이다. 대전은 전국 평균(22.7명)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고 서울(19명), 세종(19.2명), 경기(21.1명), 전북(20.9명) 등은 평균 이하다.
정부는 지난해 기준 10만 명당 28.3명인 자살률을 5년 뒤인 2029년 19.4명, 2034년엔 17명이하로 40% 감소시키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할 방침이다. 자살률이 20명 이내로 내려가려면 자살자 수가 연간 1만 명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최종 목표치는 지난해 기준 2위인 리투아니아(17.1명)를 염두에 둔 설정으로 보인다.
◆공동체·사회 문제로 확산
정부는 이 같은 국내 자살 문제가 실업률 등 고용안정성 관리 지표와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자살률과 실업률의 변동률 패턴이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는 거다. 또 소득 격차 지표인 상대적 빈곤률과 자살률도 상관관계도 상당한 유사성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자살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공동체·사회 문제로 확산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조사(2022년)에 따르면 자살유족은 슬픔·상실감뿐만 아니라 자책, 사회적 낙인 우려 등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관계단절도 경험하고 있다. 이들의 자살 위험도는 일반인과 비교해 22배나 높다. 동반자살, 유명인 자살, 범죄·부조리 문제와 관련한 자살 등은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면서 심한 경우 모방·추종 자살을 초래하기도 한다. 2015년 삼성서울병원에 따르면 유명인 자살 후 1개월간 자살자 수가 전월 대비 25.9% 증가했다는 통계도 있다.
정부가 인식하고 있는 자살 유발 요인은 정신 요인, 경제 요인, 대인관계 요인 등으로 요약된다. 심리불안·스트레스·트라우마·조울증 등 양극성 장애와 우울·중독·조현병 등 정신질환자의 자살위험이 일반인과 비교해 월등히 높다. 파산·부채 급증·채권 추심 등 경제 위기와 취업난·실직 등 직업 관련 우울·스트레스 등 특히 자살률을 높이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와 함께 이혼 등 가족 간 불화와 직장 내 갑질, 남녀문제 등 사회관계에 기인하는 불만족 등도 주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현재의 대응 구조와 인력·예산의 한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수용적 시각과 인식에 대한 개선을 지향점으로 문제를 풀어나가기로 했다.
◆불굴부터 관리까지 체계 개선
정부는 우선 자살 고위험군에 대한 집중 케어에 들어간다. 자살 시도 발생 시 지자체 자살예방센터의 현장 출동, 응급실 동행, 심리지원 등이 즉각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한다. 지금은 경찰·소방을 거치거나 본인 동의가 필요한데 앞으론 응급실 정보가 자동 연계될 수 있도록 해 즉각 개입하기로 했다. 응급실 내원자 대상 응급치료, 자살위험도평가, 단기사례관리 등을 제공하는 생명사랑 위기대응센터도 올해 92곳에서 내년 98곳으로 확대한다. 복지서비스 연계도 안내문자를 발송하는데 그치지 않고 별도 신청 없이도 복지멤버십을 통해 이뤄질 수 있게 제도를 개선한다. 1인당 연간 100만 원 한도인 자살시도자 지료비 지원과 관련해선 중위소득 120% 이하로 돼 있는 지원 조건을 폐지한다.
자살 유족의 건강한 일상 회복도 지원한다. 유족 대상 심리상담, 임시 주거, 특수청소, 법률지원, 학자금 등을 제공하는 원스톱 지원을 현재 12개 시도에서 내년 7월 전국 17개 시도로 확대한다. 치료비 지원 조건도 자살시도자와 마찬가지로 폐지할 예정이다.
정부는 또 취약계층 지원기관 간 연계 체계도 고도화 한다. 고위험군 조기 발굴과 복합적 고충 해결, 신속한 위기 해소 등을 위해 체계적인 연계·협업체계를 구축한다는 거다. 현재는 자살예방센터와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가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데 여기에 고용복지센터, 범죄피해자지원센터, 청소년상담복지센터·가족센터, Wee센터 등도 연계시켜 고위험군을 조기 발굴하고 자살예방센터에서 충족되지 못하는 복합적 고충의 경우 유관기관·통합사례관리 의뢰 및 연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근본적 원인·해소책에 집중
이번 국가자살예방전략엔 모든 부처가 달라붙는다. 보다 근본적인 자살 위기 요인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목표에 접근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우선 소상공인·개인의 7년 이상 5000만 원 이하 장기 연체 채권을 일괄 매입하고 상환능력을 심사해 소각·조정 한다. 또 불법추심 피해자의 추가적인 불법추심 피해 방지를 위해 채무자 대리인 무료선임 지원을 확대한다.
생활고·실업 등 경제적 위기 극복 지원도 강화 한다. ‘벼랑 끝 서민층’ 보호를 위해 긴급 생활안정 지원(4인가구 187만 원), 생계급여 인상(4인가구 최대 195만 1000원→내년 207만 8000원), 의료급여 부양비 제도 폐지 등을 추진한다. 복지 사각지대로 발굴된 위기가구를 대상으로 생필품을 제공하는 먹거리 기본보장 코너를 신설(130곳)하고 대학 졸업 후 미취업 청년을 발굴, 1대 1 멘토링 등을 통해 수요 맞춤형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폭력, 고립·은둔, 직장 내 갑질 등 대인관계 위기 요인을 해소하는 데도 손을 쓴다. 학교폭력과 관련해선 경미한 사안의 경우 관계회복 숙려기간 도입, 피해학생 지원 확대, 맞춤형 학교폭력 예방교육 등을 추진하고 고립·은둔과 관련해선 청년미래센터 주관으로 고립·은둔 정도에 따라 공동생활, 사회관계 형성, 가족·대인관계 회복 등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직장 내 갑질과 관련해서도 심한 경우 근로감독 등 엄정 대응하고 고용상 성차별 권리구제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또 재난심리지원체계(트라우마센터+정신건강복지센터)를 통한 트라우마 회복 지원과 장기적 추적 관찰을 통한 지속관리, 보이스피싱·전세사기 등 다수 피해자 유발 범죄에 대한 엄정한 수사 및 몰수·추징과 피해자 보호 강화, 성범죄 피해자 대상 상담·심리치료, 수사기관 동행, 법률 지원, 디지털 피해영상물 모니터링 및 삭제 등 지원, 마약류 치료보호기관 활성화 및 중독 전문병원·중독관리센터 내실화 등 재난·범죄피해, 중독 등 정신적 고위험군 보호 및 심리지원도 강화한다. 경찰·소방관, 군 장병, 북한이탈주민, 콜센터·돌봄 등에 종사하는 감정노동자 등 특수직군·집단별 특화된 정서·심리지원도 확대한다.
◆지자체·현장 대응력도 강화
지역 특성에 맞는 현장 중심을 고위험군 발굴과 예방 지원을 위해 풀뿌리 자살예방 전담체계도 구축한다. 지자체별 ‘자살예방관’을 지정, 보건-복지 연계, 지역 맞춤형 예방·대응 등 지역 자살업무 총괄 책임을 부여한다. 지자체 본청 내 자살예방 전담조직·인력 보강을 통해 ‘보건소’가 모든 자살예방·위기대응 업무를 수행하는 현행 체계를 개선, 업무를 효율화하고 기획·협업 기능을 강화한다.
지자체의 적극적인 자살예방정책 이행을 위해 지자체 합동평가 지표를 개선하고 시·도 관계관 회의를 정례적으로 개최해 평가·점검을 강화한다. 지역 내 잠재 고위험군 발굴을 위해 시·군·구, 읍·면·동 사회보장협의체에 자살예방분과를 설치하고 연간 120만 명 규모의 복지사각지대 발굴 과정에서 정서·심리 고위험군을 선별, 자살예방센터로 연계한다.
정부 차원의 정책 기반도 과학적으로 고도화 한다. 자살사망자 전수를 대상으로 소득·재산·질병·진료이력 등을 분석하고 지자체에 대한 사망자 형사사법정보 공유, 자살시도자 정보 모니터링·분석 체계 마련 등을 추진한다. AI 기술을 활용한 자살예방상담 전화 상담 내용 실시간 분석, 온라인 유해정보 실시간 모니터링·신속차단·삭제 등도 도입하고 자살예방상담전화(109) 2센터를 추가 설치(51명)하는 한편 고립·은둔 청년 대상 1대 1 온라인 찾아가는 상담서비스를 제도화 한다. 또 자살예방정책위원회 산하에 범부처 차원의 자살 예방·대응 정책을 기획·추진할 ‘범정부 자살대책추진본부’를 설치해 분야별로 해소되지 못해온 구조적 요인 문제에 대해 관련 부처가 적극 대응·개선하도록 하고 추진상황을 지속 점검한다.
김 총리는 “자살 예방을 위해 그간 정부에서 노력을 했지만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한 게 사실”이라며 “새 정부에서는 자살을 국가적 과제로 두고 자살예방정책위원회를 체계적으로 운영하면서 자살 위험에 계신 분들을 인지하고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