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정책서 연결고리 약한 개인 철저히 배제
버스정류장, 인도, 자전거도로서 보행자 약자
보행 불편이 상인 vs 보행자 갈등 유발 요소
원도심과 신도심 간 큰 집값 격차까지 만들어내

사진 = 대전시청
사진 = 대전시청

사통팔달, 교통의 중심지라는 대전이지만 정작 이동의 가장 기초적인 보행엔 불편함이 발생하고 있다. 여러 교통 관련 대책에서 연결고리가 가장 약한 개인의 보행은 철저히 배제되고 있으며 보행 불평등까지 거론된다. 보행의 불평등은 장기적으로 원도심과 신도심의 재산 격차까지 만들어낸다는 지적이다.

◆살기 좋은 도시… 걷기 힘든 도시
17일 대전에서 가장 유동 인구가 많다는 대전 서구 둔산동. 대전시청과 대전시교육청 등 공공기관과 함께 갤러리아백화점 타임월드, 이마트 둔산점까지 다양한 시설이 몰려 있는 곳이다. 도심이 형성된 지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둔산동은 여전히 대전의 중심지 중 하나다. 비교적 신도심에 분류되기에 여러 기반 시설 역시 훌륭하다. 인도가 대표적이다. 넓은 폭의 인도는 여러 사람이 함께 걷기에도 무리가 없을뿐더러 자전거가 인파를 지나도 무리가 없다. 상대적으로 버스정류장이 설치된 곳은 인도의 폭이 좁아지는 게 보통이지만 둔산동과 일대는 버스정류장이 들어선 규모만큼 인도의 폭도 넓어진다. 둔산동 같은 신도심에선 대전 어디로든 이동의 불편함이 없다.

그러나 시선을 원도심으로 향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같은 날 중구 중촌동의 한 버스정류장 인근. 자전거가 많이 보급됐고 공유형 자전거는 물론 개인형 이동장치(PM)까지 흔한 시대가 됐지만 중구를 비롯한 원도심 일원에선 쉽게 운행되는 걸 찾아보기 힘들다. 사람 하나 다니기 힘들 정도로 인도의 폭이 좁은 곳이 태반이어서다. 특히 중구의 초입이라 할 수 있는 중촌동은 중촌초등학교, 대전고등학교 등이 있어 버스정류장도 많은데 버스정류장이 위치한 곳의 인도의 폭은 둔산동 등과 다르다. 그나마 원도심에서 유동 인구가 많다는 은행동 등은 상황이 낫지만 신도심에 비하면 보행 환경이 좋다고 말하기 힘들다. 이곳에서 보행자는 여러 이동 수단 중 가장 약자다.

◆철저히 배제되는 보행자
이처럼 인도에서 가장 안전이 보장돼야 할 보행자가 가장 위험에 노출된 이유는 여러 교통수단 중 보행자의 순위가 가장 끝에 있어서다. 여러 교통 정책에서 보행자의 안전을 담보해야 한다고 명시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표적인 게 버스정류장과 교집합을 보이는 원도심의 인도다. 버스정류장의 설치 기준은 자치단체 조례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인도의 폭을 2.5m로 명시하며 적어도 1.5m를 확보해야 하는데 이는 버스정류장 설치로 보행자가 불편을 겪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행정안전부의 ‘자전거 이용시설 설치 및 관리지침’에도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의 경우 보행로는 1.5m 이상이라 정의했다. 그러나 원도심 인도에서의 현실은 자전거도로와 인도가 구분 없이 혼용되면서 보행자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1.5m라는 문구의 효력은 사라진다. 특히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에 버스정류장까지 설치된 곳을 보면 보행자의 안전은 사문화됐다. 버스정류장과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가 위치한 인도 양방향에서 자전거와 보행자가 맞닥뜨리는 순간 자리를 비켜주는 건 대부분 보행자다.

보행 환경을 위협하는 건 또 있다. 대개 원도심에 국한하는 요소인데 인도를 침범하는 점포 역시 보행자의 안전을 위협한다. 여러 점포가 개방 영업을 사실상 기본값으로 하는 상황에서 인도까지 침범해 다양한 물건을 내놓고 영업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뜩이나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인도에서 보행자는 점포의 물건 적체까지 영역을 공유해야 한다. 보행 불평등이 큰 곳일수록 보행자와 상인 간 갈등까지 나온다는 얘기다.

◆집값 불평등 부르는 보행 불평등
보행의 불평등은 장기적으로 원도심과 신도심의 집값 차를 발생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른바 숲세권의 존재다. 숲세권은 공동주택 인근 보행을 보장하는 공원이나 녹지가 존재하는지를 따지는 용어다. 과거 부동산시장에서 가장 좋은 ‘세권’은 역세권이었으나 건강권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숲세권 역시 집값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즉 공동주택 인근에 좋은 공원이나 녹지의 존재 여부가 집값을 결정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나 대전 내 원도심과 신도심을 구분해 공원 등의 현황을 살피면 현저한 차이가 발생한다. 대전시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도시공원 수는 원도심이라 할 수 있는 동구와 중구의 경우 100곳, 95곳에 불과한데 서구와 유성구는 145곳, 202곳이나 됐다. 구도심인 대덕구는 92곳으로 가장 적었다. 녹지로 따지면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동구와 중구, 대덕구는 39곳, 15곳, 42곳이고 서구와 유성구는 75곳, 251곳이다. 이는 집값의 격차를 불렀다. 동구와 중구, 대덕구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2억 5123만 원, 3억 940만 원, 2억 1750만 원인데 공원과 녹지 등이 많은 서구와 유성구는 3억 6899만 원, 4억 3983만 원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단순한 보행 환경의 차이가 장기적으론 원도심과 신도심의 재산 차이까지 야기한다고 볼 수 있다. 여러 교통수단에서 가장 기본적인 보행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박항주 정의정책연구소 기후위기센터장은 “교통을 국민의 기본서비스로 보는 성향이 강하나 보행을 교통정책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보행의 책임을 개인에게 부과하고 보행 친화성에 무관심하다. 결국 보행의 범위는 축소됐고 불평등하게 변질됐다. 보행 중심은 공간의 공공성 강화로 이어질 수 있고 생산과 소비, 여가, 문화, 연대에 호혜적인 관계를 만들 것으로 예상돼 생태전환의 근본적인 출발점은 자력으로 이동하는 보행에서 시작돼야 한다”라고 제안한다.

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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