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요즘 한화 팬들은 ‘살맛’이 난다. 십수 년째 희망을 품고 올해는 좀 성적이 오르려나 했던 기대가 ‘그러면 그렇지…’로 끝나던 허탈한 마음을 올해는 풀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드디어 한화 이글스 팬들도 가을 점퍼를 입고 야구장에서 ‘나는 행복합니다’를 부를 수 있게 됐다.
한여름, 수십억의 예산을 쏟아부은 축제도 열었고, 지역 빵집을 찾아오는 방문객이 원도심에 넘치는데 우리는 왜 ‘죽을 맛’이지…? 지하상가 상인들의 한탄이 모 일간지의 기사에서 읽힌다. 한때는 지역 상권을 쥐락펴락 할 정도로, 사람들로 넘쳐났는데 경기를 탓하기에는 해도 해도 너무할 정도로 찾는 사람이 없다는 불안이 지하상가 상인들을 덮친다.
기상청의 직원들만큼이나 변덕스러운 날씨는 야외에서 행사를 진행하는 스태프들과 관객들에게는 미치고 팔딱 뛸 일이다, 그간 미루어졌던 문화 예술 행사, 소소한 지역축제들이 도시 곳곳에서 준비되거나 열리고 있는데 날씨가 변수다. 청명한 날씨에 난데없이 쏟아지는 비로 행사장의 스태프들은 오늘도 ‘쓴맛’을 보게 될까? 전전긍긍한다.
원도심은 기대에 찬 사람들의 긴 줄로 거리가 막힐 정도다. 어디 그뿐인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유된 숨은 맛집 골목까지 사람들의 기대가 넘친다. 식사를 마치고 나온 사람들의 미소에서 ‘기대한 그 맛’이라는 느낌이 풍긴다. ‘맛’은 우리가 알고 느끼는 달고, 쓰고, 시고, 짜고, ‘오호라 이 맛이네!’ 하는 감칠맛의 미각뿐만 아니라 인생의 우여곡절, 희로애락의 다양한 경험들도 ‘맛’으로 표현한다.
음식의 맛이란 개인의 전적인 취향에 따라 다르다. 우리가 감각으로 느끼는 맛은 음식이 입안의 혀의 표면에 있는 1만여 개의 미뢰(혀에서 맛을 느끼는 세포)라는 감각 기관을 통해 느낀다고 알려져 있다. 최근 자료에 의하면 맛은 음식을 씹는 행위와 위장을 통해서도 미각을 느끼지만, 대부분의 맛은 코를 통해 들어오는 미세한 음식의 향을 통해 맛이 결정된다고 한다.
인간의 오랜 의구심 하나가 살기 위해 먹는 것인지. 먹기 위해 사는 것일까 하는 존재의 문제를 고민하며 산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인류는 생존을 위해 대략 7만 년 전 아프리카를 떠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동하며 오늘의 삶터를 일구었다. 근대화 이전까지 한반도의 정착민들은 쌀을 주식으로 삼았고, 집단의 엄청난 노동을 통해서 생존할 수 있었다. 근대 철도가 도입되고 도시가 만들어지면서 생존을 해결하지 못한 농경 공동체는 빠르게 도시 노동자로 편입되었다.
대표적인 도시가 대전이다. 철도와 함께 다양한 지역 사람들이 도시에 유입되었다. 역 앞 시장이 만들어지니 상인을 따라 전국 각지의 음식들도 모여들었다. 식재료들이 철도를 따라 보급되면서 북한의 냉면, 부산의 생선, 호남의 손맛, 거기에 일본인 거주자의 음식까지 뒤섞였다. 사람들은 상업이 활발해지면서 ‘양이 많고, 빠르고 값싼 맛’을 선호했다. 대전이 칼국수·빵을 통해 밀가루 도시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은 존재하는 한 이동을 멈추지 않는다. 그것이 먹기 위해서든 살기 위해서든 말이다. 이동의 목적은 개인의 생각에 우선하지만 도시는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집합체로 형성된다. 철도가 만든 도시 공간, 이주민이 가져온 다양한 맛, 그리고 그들이 떠나왔던 자신의 땅과 환경에서 대대로 익혔던 DNA가 도시에서 어우러지며 새로운 맛을 만들어낸다.
누군가 도시 대전의 상징을 ‘과학이다. 철도다. 밀가루다.’라고 각기 주장해도 그것이 오롯이 시민들의 정서에 공감을 주지 못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음식을 함께 먹고 나눈 ‘식구’라는 의미의 공동체 힘을 부여할 무언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맛은 음식을 넘어 일상의 삶에서 느끼는 정서와 감정을 드러내는 뜻으로도 활용되는 ‘맛’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도시에 사는 이유나 목적은 다르더라도 사는 동안 시민들이 느끼는 ‘도시 대전의 맛’은 어떨지… 살맛나는 곳인지, 죽을 맛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