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명성 전 둔산여고 교장
2013년에 퇴직한 후, 퇴직한 몇몇 친구들과 매주 월요일 산행하는 동아리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처음에는 대전 근교의 산들을 여기저기 다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한 장소를 계속 다니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일치로 지금은 계족산 죽림정사에서 절고개까지 왕복 10km 임도 길을 걷는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당히 있어서 심장에 적당히 압박을 주면서 걸을 수 있어서 칠십이 넘은 사람들에게 힐링하기 좋은 코스이다. 산행하는 친구 중에 한 친구가 아들 둘이 장성하여 모두 결혼해서 따로 살고 부부만이 신혼생활처럼 살고 있어서 부부가 함께 산행을 시작했다. 그 친구 사모님은 모든 사람에게 매우 친절하고 자상한 분이셨다. 친구가 출근할 때면 항상 출발하는 차 앞까지 배웅을 나와서 잘 다녀오시라는 인사를 하는 조선 시대의 여인이었다. 물론 그런 내조를 받는 친구는 사모님에 대한 사랑이 지극해서 받는 대우라고 생각한다. 친구는 대학교 시절에 문인협회에 시인으로 등단하여 지금까지 끊임없이 창작활동을 하면서 정서적으로 순수하고 아름다운 시를 쓰고 있다. 그는 그 시속에서 나타내고 있는 순수하고 아름다움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런 모든 모습이 아내에게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것 같다. 함께 산행한 후 점심을 먹고 헤어지는데 친구 사모님이 식사 끝난 후, 먼저 나가서 남편의 신발을 신기 좋게 돌려놓는 것을 보고 우리는 깜짝 놀랐다. 요새 그렇게 하는 부부가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과 평소에 친구가 얼마나 자상하고 사랑스럽게 했으면 저런 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를 부럽게 생각하면서 나 스스로 반성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2018년 즈음에 친구가 아내가 치매증세가 있어서 대학병원에 다니고 있다고 말을 할 때 우리는 충격이었다. 그리고 친구의 용기에 감탄했다. 대부분 사람은 그런 경우 감추려고 하고 함께 다니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친구는 남달랐다. 아내를 더 열심히 함께 걸을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사모님도 함께 산행하는 것을 너무 좋아했다. 처음에는 우리가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삼 년이 지나면서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사모님은 천성이 남에게 주는 것을 좋아해서 산행할 때도 먹을 것을 많이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나눠주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그 정도가 너무 심해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남편이 그러지 말라고 말려도 막무가내였다. 그다음으로 본인이 말을 할 때는 각 물건의 이름을 정확히 표현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 물건의 이름을 되받아서 말을 하면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즉, 자기 생각을 말할 수는 있는데, 듣고 인지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우리 머리는 말하는 부분과 듣는 부분이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럴 즈음에 친구는 집주변 상점 주인한테 항의를 받는 경우가 있다면서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사모님이 물건을 생각 없이 가져오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을 한 것이다. 그리고 혼자 나가서 본인이 어디 있는지를 몰라 핸드폰으로 남편을 찾기도 하고 경찰서에서 전화 오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아픈 중에도 남편의 신발을 바로 놓는 것, 식사 후 항상 밥값을 먼저 내려고 하는데 그 계산은 정확하게 했다. 평소에 하던 일상적 습관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것 같다. 그럴 즈음 친구가 너무 힘들어하면서 인내하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사모님을 ‘주간보호센터’에 의탁하는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친구는 사모님과 정이 너무 깊어 차마 그 방법을 선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기는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은 하는데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사모님도 시간이 갈수록 남편에게 의존하는 정도가 더 심해지고 있었다. 너무나도 부부가 다정한 것이 문제였다.
사모님은 ‘전두측두엽치매’라는 병을 앓고 있다. 이 치매는 성격 변화(무례함, 충동적 행동)와 언어 능력 저하가 특징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치매는 처음에는 타인과 사회규범을 잃어버리고 나만이 존재하는 것으로 출발해서 결국은 나도 잃어버려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친구는 이런 것을 정확히 알면서도 본인이 함께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좋은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마치 아내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승화하려는 모습으로 보인다.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모습은 답답해 보이나 너무나도 성(聖)스러운 모습으로 느껴진다. 그는 아내의 아픔을 ‘당신의 아픈 날을 감싸주라고’라는 제목의 시로 표현했다. 그 시의 마지막 연에서 “당신의 아픈 날을 감싸주라고/ 내가 태어났나 봅니다.”라고 썼다. 아내의 아픔까지 자기 내면화하여 함께하는 것은 고귀하고 지극한 사랑이다. 아내의 아픔까지도 사랑하는 친구의 정신세계가 한없이 부럽다.
(친구에게 칼럼에 게재하는 것을 허락받고 쓴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