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 명예교수

나는 내 맘이 산란하거나 무엇인가 답답하고 꽉막힌 듯할 때 아주 복잡하고 시끄러운 시장을 찾을 때가 많(았)다. 지금은 좀 덜하지만, 거기에 가면 한두 푼 벌기 위하여 무척 열심히 온 뫔으로 자기 물건을 선전하는 몸짓과 소리들을 듣는다. 골라골라 골라골라, 떨이요 떨이, 싸다싸다 어 싸다, 어디 가도 이 값에 이 물건 다시 못봐요, ××× 한 단에 5000원, 지금 막 바다에서 건져온 ○○○이 한 쌍에 만 원! 하면서 소리 지른다. 몸 부딪치면서, 이리저리 몸을 비틀면서 사람들 틈새를 비집고 나갈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주 아름다운 선율이 있는 듯하였다. 그 때 한창 듣던 ‘솔베지의 노래’가 들려오는 듯하였다. 그 소리 어디에서 들려올까 귀를 쫑긋하고 한 발 한 발 움직이던 때가 있었다. 그 아름다운 소리의 근원이 어디인지를 찾고 싶었다. 물론 찾을 수는 없었다. 어디인가 거기인가 할 때 그 소리는 끝났었기 때문이다. 시끄러운 소리들이 가득한 곳에서 맘을 때려 다른 복잡한 맘과 소리를 잠재우던 그 한 소리 찾으려고 내 온 존재를 바쳐 찾던 순간이었다. 지금도 시큼하고 비릿하고 찝찔한 시장 골목을 찾을 때가 많다. 거기 느낌 하나 있을까 싶어서. 삶을 이끌기 위해 던지는 저 소리들의 참 뜻, 참소리가 무엇일까 찾고 싶어서.

세상이 참 시끄럽다. 상당히 많은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 터지는 소리가 몹시 시끄럽다. 무역전쟁, 관세전쟁의 소리가 참 시끄럽다. 상당히 많은 민족과 민족들 사이에 터지는 소리들이 참으로 시끄럽다. 종교와 종교들 사이의 소리가 참으로 시끄러운 곳이 너무 많다. 하늘에는 전폭기 소리가 천지를 진동할 만큼 시끄럽다. 나라 안에서 정당들과 정당들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가 매우 시끄럽다. 여당과 야당 사이에서 주고받는 소리들이 시끄러움을 넘어 듣기에 몹시 민망하고 메스껍고 화가 날 정도다. 언론이 죽었다고 판단되는 지금 그 많은 잡스러운 것들을 마구 쏟아내는 무분별하고 무자비한 유튜브나 개인 미디어들의 소리들은 또 무엇인가? 더럽기 짝이 없는 소리 소리들로 세상이 가득하게 채워진다. 그래도 그 굉음같은 시끄러운 소리 가운데서 고요히 들리는 어느 소리 있을까싶어 귀를 기울여본다. 그 소리들 사이에 혹시나 씨알의 소리가 있을까 싶어 가만히 살펴본다. 그런데 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에 희생된 사람들, 특히 가자지구의 난민들에게 구호품 등을 가지고 가던 많은 사람들 중 한국의 평화활동가 혜초 씨도 포함된 구호단이 이스라엘 군에게 나포된 사건은 또 다른 날카롭고 놀라운 소리다. 전쟁이 심각하게 진행되는 지역에 자신의 생명을 던져, 그곳의 고난받는 이들을 구하기 위하여 간 그들의 소리는 내 가슴을 세게 쳤다.

이렇게 시끄러운 소리들이 가득한 지금 우리 사회에는 또 놀랍게 고요함을 추구하는 모임들이 많아졌다. 절을 찾고, 수도원을 찾으며, 작은 단체나 개인들이 하는 명상원이나 선원들이 늘어났다. 물론 그 중에는 상당히 많은 상업성을 띈 것들도 있지만, 사업으로 하려는 일이 많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요구하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뜻한다. 그들은 무엇을 찾고 바라는가? 물론 그들 각자는 모두가 다 절박하고 심각하여 그렇게 할 것이지만, 그래도 궁금한 것은 무엇이 그렇게 절박하단 말인가? 그에 대한 대답을 듣고도 싶다. 물론 나도 매일 고요히 길게 침묵하면서 깊은 소리를 기다린다. 거리를 걷거나 시장에 가거나 사람들을 만나거나 어디에서 어떤 상황에 있든지 언제나 그 당시에 세미하게 들리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 속에서 그 내면의 소리가 들려주는 뜻이 무엇인지를 살피려고 애를 쓴다.

내가 지금 속해 있는 퀘이커(종교친우회)는 모든 사람은 다 ‘내면의 빛’을 품고 있다고 믿는다. 무엇인가가 작용하여 그 빛이 밝아질 때 들리는 소리가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래서 주변상황이 고요하거나 시끄럽거나, 분주하거나 한가하거나 묻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그 내 속에 있는 빛이 밝아져서 무엇인가를 나에게 말하기를 기다린다. 마음에 들리는 소리가 무엇인지를 분별하려고 애를 쓴다. 가끔 가슴이 뜨겁기도 하고, 울렁거리기도 하고, 가벼워지기도 하고, 산뜻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는 내 속맘이 평안해지고 자신이 달라져 보이기도 한다. 그러할수록 내 욕심, 내 의지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나의 경우, 명예, 높은 지위, 아주 많은 재산, 많은 권력을 가져 넓은 땅을 통치하겠다거나, 다른 사람과 치열한 경쟁을 하여 기분 좋게 이기겠다거나 하는 따위의 욕망은 전혀 없다. 맘의 방향을 이렇게 가질 때, 나는 좀 더 나 자신이 평화롭게 사는 방향으로 돌려지기를 바란다. 말을 부드럽게 이쁘게 하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에서 훨씬 더 평화로운 기운이 서로 오고가기를 바란다. 내가 사람이나 사물을 바라볼 때 내 눈에서 어떤 독기를 품지 않고 상서로운 기운이 나가기를 바란다. 안타까운 일을 당한 사람을 볼 때, 그가 모르는 사이 내 맘 깊이 그를 위한 간절한 기도를 드린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내 한 사람의 맘만 아니라, 내가 지금 몸 담고 있는 이 사회, 이 시대의 폭력스럽고 불편스러운 것들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고, 그에 대한 발언이 달라지며, 내 행동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고요한 가운데서 들리는 소리는 내 자신의 행동만이 아니라, 사회를 향한 내 맘의 방향을 바꾸어 놓고, 아주 작긴 하지만, 사회발언과 사회행동의 지침이 된다. 특히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다면, 정치가들이나 사회를 위하여 무엇인가를 한다는 사람들은 하루에 30초 만이라도 빈 맘으로 고요한 가운데 들리는 소리를 듣기를 힘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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