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대전보건환경연구원장

이보시게!

무얼 그리도 골똘하고 계시는가? 아직도 자식 상념에 빠져 있으신 건 아니시고? 걱정 붙들어 매시게나! 세상 나올 땐 다 제 밥그릇 챙겨 태어난다고 하지 않던가! 자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밥벌이는 할 것이니 근심은 그만 내려놓으시게. 아직은 때가 아니라서 그런 것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게나. 답답하기야 하겠지만 기다리다 보면 좋은 날도 오지 않겠는가!

거기다 또 뭐 때문에 안달하고 계신가? 조급해한다고 달라지는 것들이 있긴 있으시고? 봄이 되어야 여름이 오고 가을 되어야 겨울이 오는 법인데 너무 보채고 계신 건 아니시고! 그렇게 골몰하다가 황금알 꺼내려 거위 배 가르는 우를 범하면 어쩌려고 그러시는가! 기다리다 보면 지들이 알아서 꽃도 피고 때가 되면 열매도 맺지 않겠는가!

부모라고 자식보다 나으라는 법은 없다네. 꽃상여 앞에서 효자였던 것처럼 울고불고 까무러치는 시늉까지 했으면서도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참지 못해 허겁지겁 먹던 기억이 있지 않으신가? 물론 자책까진 하실 필요는 없다네. 왜냐고? 자식에게 기대하는 바는 크지만 자식 역시 나와 별반 다르지 않으니까. 자식만큼은 내 잘못된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는 게 부모의 불문율이니까. 그래서 내가 하지 못했던 걸 자식에게서 걸어보는 기대는 희망일 뿐 강요할 처지는 아니라는 거지.

모든 부모는 자식들이 신줏단지이면서 애물단지가 될 수밖에 없다네. 그렇다고 언제까지 끌어안고만 사시겠는가? 잘살고 못살고는 지 팔자소관이라서 내치면 어떻게든 살길을 찾아가게 되어있다네. 물길은 트는 대로 흐르는 것처럼 부모가 보기엔 어설퍼도 맡겨놓으면 자기들의 방식대로 부대끼며 잘 살아가게 되어있다네. 왜 오리 새끼는 길러 놓으면 물로 가고 꿩 새끼는 산으로 가듯, 자식놈도 머리가 크면 제 갈 길을 찾아가지 않겠는가? 거기다 자식들이 바빠야지 왜 부모가 바빠야 하겠는가? 지금부터라도 내려놓으면 자식은 효자가 되고 부모 역시 편해지기 마련이라네.

왜 어렸을 적 말썽이라도 부리면 “너 커서 뭐가 될래” 하시며 어르신들이 타박하실 때도 있었고, 실수로 눈살 찌푸리는 사고를 치고 나면 “저걸 낳고 미역국을 먹었다니”라며 지청구를 듣기도 했지만 지금은 도리어 당신들이 그 아이를 의지하며 희망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으신가? 그렇다면 좀 더 기다려 주시면 어떻겠는가? 자기 인생인데 아무렇게 살기야 하겠는가? 한 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 했으니 잦은 실수가 버릇처럼 되거든 그때 가서 감 놔라 대추 놔라 간섭해도 늦지는 않을 걸세.

노파심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네. 팔십 노인이 육십 아들에게“길 조심 해라.”라고 하지 않으시던가? 그건 세상에서 제일 마음이 놓이거나 의지할 수 있을 만큼 미덥고 든든한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부모는 자식을 걱정함일세. 그러나 걱정도 도가 지나치면 걱정하지 않은 만 못하다네. 구하는 바가 없으면 부딪힐 일도 없지만, 바라는 바가 많으면 만사가 궁해지는 법이라네. 그렇다면 내 것부터 내려놓으시면 어떻겠는가? 다가서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편하지도 않다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고 신경 쓸 일도 없어진다네. 자식은 자식들 인생 살면 되는 거고 우리는 우리 인생을 살아가면 그만이라네.

하기야 자식에 대한 하늘바라기가 버린다고 버려지겠는가? 내가 그랬다고 자식들도 그러란 법은 없다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러하다 해서 내일도 그래야 한다는 법도 없다네. 그게 무엇이든 자식에게 맡겨놓으면 자식들이 더 잘 알아서 할걸세. 마음과 달리 자식의 미래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가 않다네. 자식들이 알아서 잘 사는데 부모랍시고 자식의 미래까지도 간섭하려니 상념에 젖는 것이 아닐까?

어쨌든 자식의 분량만큼만 떼어놓아도 우리 인생도 한결 수월해지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자식들도 나름대로는 아주 잘하고 있으니 일단 믿고 맡겨 보고‘걱정도 팔자’란 굴레에서 벗어나 보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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