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관세 상한 확정, 車 25%→15%, 의약품·반도체도 수혜
핵잠·핵연료주기 자주권 확보… 충청권 ‘핵기술 클러스터’ 부상

사진 = 트럼프 SNS
사진 = 트럼프 SNS

한미 양국이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전략투자 양해각서에 서명하며 관세 협상에 최종 마침표를 찍었다. 이번 합의로 한국은 대미 산업 투자를 본격화하는 대신 방위 분야에서 통큰 ‘안보 선물 보따리’를 챙겼다. 지역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상업적·합리적 투자만 추진

한국과 미국 통상장관은 14일 3500억 달러(약 509조 원) 규모의 전략적 투자에 관한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지난 7월 30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지 약 3개월 보름 만이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미국에 총 3500억 달러의 전략적 투자 운용에 나선다. 이 중 2000억 달러는 미국 대통령이 투자위원회(위원장 상무장관)의 추천을 받아 투자처를 선정하기로 했다. 다만 투자위원회는 사전에 한국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이 위원장으로 있는 협의위원회와 협의해 ‘상업적으로 합리적인 투자’만을 미국 대통령에게 추천하기로 했다.

투자 분야는 조선·에너지·반도체·의약품·핵심광물·인공지능·양자컴퓨팅 등 양국의 이익을 극대화할 산업으로 결정됐다. 외환시장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연간 투자 한도는 200억 달러로 제한됐다. 다만 우려할 만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납입 시기와 투자 규모를 조정할 수 있다. 수익 배분은 원리금 상환 전까지는 한국과 미국이 5대 5로 나누되 상환 후에는 1대 9의 비율로 배분하기로 했다. 향후 20년간 원리금 상환이 불발되면 배분비율을 다시 조정한다. 이 밖에 조선협력 투자금 1500억 달러는 기업의 직접투자(FDI)와 정부의 정책 보증 등의 방식으로 투입하며 발생하는 모든 수익은 한국 기업에 귀속시키기로 했다. 대전의 한 무역학 교수는 “이번 한미 전략투자는 규모 면에서 역대 최대 수준으로 사실상 미국 산업 전반에 대한 구조적 지원 성격이 짙다. 2000억 달러 투자처를 양국이 협의해 선정하고 수익 배분은 원리금 상환 이후 1대 9로 설정된 만큼 초기 위험은 한국이 부담하고 장기 수익은 미국이 가져가는 구조”라며 “다만 조선 분야에서 막대한 수익이 예상되는 데다 정부가 특별법을 제정해 특별기금을 설립하고 외화조달·투자운용을 직접 관리하기로 한 만큼 투자금 회수를 제도적으로 담보하려는 방어장치는 충분히 마련된 셈”이라고 평가했다.

◆관세협상 마침표…‘15% 상한’

한미 전략투자협약 서명은 단순한 투자 협력을 넘어 대미 관세 협상의 실질적 마침표가 됐다. 이번 합의를 통해 한국은 대미 수출의 가장 큰 부담이던 고율관세를 대폭 줄였다. 앞서 미국은 지난 8월 7일부터 상호관세를 15%로 인하해왔으나 불확실성이 남아 있었다. 이번 협정으로 양국 간 공식 합의로 확정되면서 제도적 안정성을 갖추게 됐다. 또 최혜국대우(MFN) 관세가 15%를 넘는 품목이라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요건을 충족할 경우 15%만 부과하기로 해 한국산 제품 전반에 15%의 관세 상한이 설정됐다. 가장 큰 수혜는 자동차 산업이다. 미국은 한국산 자동차와 부품에 부과하던 25%의 고율 관세를 15%로 낮추기로 했다. 전략투자협약 이행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에 제출되는 달의 1일자로 소급 적용된다. 정부는 이달 중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충남 자동차부품업체 관계자는 “관세율이 25%에서 15%로 낮아지면 유럽연합(EU)과 일본 기업과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게 된다”며 “그동안 불리했던 납품 단가 협상력이 회복되고 수익 구조도 한층 안정될 것”이라고 반겼다.

목재 제품은 최대 15%의 관세가 부과되고 특정 항공기·부품의 상호관세와 그 생산에 쓰이는 철강·알루미늄·구리에 관세가 면제된다. 이 조치는 협약 서명일인 14일부터 바로 시행된다. 또 제네릭 의약품(원료와 전구체 포함)과 일부 천연자원 등 전략 품목은 관세 면제 대상에 포함됐다. 이 조치는 연내 열릴 한미 FTA 공동위원회에서 세부 합의를 거친 뒤 발효될 예정이다. 일반 의약품의 경우 최대 15%의 관세 상한이 적용된다. 대전 바이오제약업계 관계자는 “제네릭 원료와 전구체에 관세가 부과될 경우 연구용 원료비가 올라갈 뻔했지만 면제 조치로 원가 부담을 막을 수 있게 됐다. 일반 의약품은 일본·유럽연합(EU) 등 주요 경쟁국과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가 조정돼 수출 경쟁력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바이오시밀러는 합의문에 포함되지 않아 여전히 불안하다”고 말했다. 반도체와 장비 분야도 주요 경쟁국인 대만보다 불리하지 않은 조건을 확보했다.

비관세 분야에선 미국의 요구가 상당 부분 반영됐다. 한미는 미국산 자동차의 국내 판매 상한(연 5만 대)을 폐지하고 디지털 서비스 분야에서는 망 사용료나 플랫폼 규제 등에서 미국 기업을 차별하지 않는 ‘비차별 원칙’을 재확인했다. 다행히 농업 분야는 추가 개방 없이 협력 강화로 방향을 맞춰 농축산물 시장 부담을 최소화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관계자는 “농축산물 추가 개방이 완전히 제외된 건 큰 의미가 있다. 지역 농가도 안심하고 생산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십년 염원 ‘안보 보따리’

이번 합의는 단순한 경제·통상을 넘어 핵연료주기 자주권과 핵추진 잠수함까지 공식 트랙에 올린 ‘안보 패키지’로 평가된다. 미국이 공개한 공동 팩트시트에는 대미 투자·관세 조정과 함께 “한미 123협정 및 미 국내법의 범위 내에서 한국이 평화적 목적의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추진할 수 있도록 이어지는 절차를 지지한다”는 문구가 명시됐다. 즉, 단계적·절차적 지원을 공식화한 것이다.

더불어 한국의 핵잠 건조 승인도 팩트시트에 담겼다. 국내 건조를 열어두고 논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원자력학계 관계자는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절차가 공식적으로 열리면 대전은 연구 중심지로서 핵연료주기 실증의 핵심 거점이 된다”며 “SMR(소형모듈원전)과 연계한 저농축연료(LEU) 가공, 방사선 소재 산업까지 확장될 경우 충청권이 국가 핵기술 클러스터로 재편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은한 기자 padeuk@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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