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이씨의 현대 인물, 한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

<한국인 최초로 우주비행에 나선 이소연이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소유스 우주선에 탑승하며 손을 흔드는 모습. 한국의 첫 우주인 이소연씨를 태운 소유스 우주선은 2008년 4월 8일 오후 8시 16분 35초(한국시각) 발사돼 정상궤도에 진입했다.>

대한민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1978년 4월 27일 광주광역시 출생)이 공주이씨를 빛낸 현대인이다.
이소연은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바이오시스템학박사 출신으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으로 있으며 카이스트 겸임교수이다. 지난 2008년 제8회 자랑스런 한국인대상 우주과학부문상을 수상했다.
공주이씨(公州李氏)를 예전의 지명인 공산이씨(公山李氏, 시조는 이응규:李應圭)로 부르는 종문(宗門)이 있으나, 공주이씨와 같은 집안이다.
공주이씨는 조선시대에 문과(文科: 대과)에 14명, 무과(武科: 무관을 뽑기 위해 보던 과거로 시험은 무예와 병서)에 18명, 사마시(司馬試: 생원, 진사를 뽑던 과거)에 39명, 역과(譯科: 중국어, 몽고어, 일본어, 여진어에 능통한 사람을 역관으로 뽑아쓰기 위해 보던 과거)에 1명 등 72명의 과거급제자를 배출했다.
인구조사에서 공주이씨는 1985년에는 총 6809가구에 2만 8674명이었으며, 2000년에는 1만 764가구 3만 5148명이었다.
공주이씨 시조 이천일의 후손들은 충청남도 공주시 월송동 239번지에 단을 세우고 매년 음력 10월 5일에 향사(享祀:제사)한다.

충절사(忠節祠)-충남문화재자료 제70호(1984.5.17)
충절사는 이명성(시호 문성,두문동72현)과 이명덕(1373∼1444)형제의 학행을 기념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곳이다.
이명성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되자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절개를 지킨 고려 유신인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이다. 이명덕은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으로 호는 사봉이다.
좌부대언 등을 지냈고 세종이 즉위하자 이조참판(參判: 종2품 차관), 병조참판(국방차관) 등의 벼슬을 지냈다. 70세에 벼슬에서 물러났으며 후에 우의정(右議政: 정1품 정승)에 추증됐다. 충절사는 원래 충남 연기군 명탄에 세웠던 충절사라는 사당인데 명탄서원이라고도 불렸다. 1490년(성종 21)에 창건되었으며, 1585년(선조18)에 사액서원이 됐는데, 서원이 처음 건립된 곳은 명탄(鳴灘: 현재의 세종시 금남면 영대리)이므로 명탄서원이라고도 부른다.
1967년에 간행된 ‘명탄서원지’에 따르면, 임진왜란때 소실되자 후손들이 유허지에 모옥(茅屋) 1칸을 짓고 그 명맥을 유지했다. 1851년(철종2)에 이학수(李鶴秀)와 조재응(趙在膺), 안광직(安光直:1775~?) 등이 건의하고, 유림들의 발의로 현재의 위치에 중건했다.
이후 1871년(고종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됐고, 1955년 공주향교의 유림 이명성의 후손 이찬(李燦) 및 이명덕의 후손 이태희(李泰熙) 등이 경비를 모아, 1956년에 현재의 사당과 삼문을 재건했다.
 

충절사(忠節祠)-충남문화재자료 제70호(1984.5.17) - 공주시 월송동 사송정에 위치한 충절사 명탄서원

1957년 강당을 가건물로 건립했고, 1959년 이명성과 이명덕의 위판을 봉안했으며, 1985년 묘정비와 강당, 고직사 건물을 지었고, 서원 뒤편에는 이명덕의 묘와 묘비가 있으며 봄·가을에 제사(향사)를 지낸다.
1998년 이명성의 18세손 이종인이 충청남도와 공주시 및 유림의 후원으로 현재의 강당을 중건했다.

명탄서원은 려말선초의 학자 이명성과 이명덕의 학행과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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