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순직 前 의원 3선 개헌 반대 탈당

친동생 양인직, 경천中 설립 후학양성

육사 6기생 235명은 임관과 동시에 여순(麗順), 지리산, 제주도, 오대산 지구 등 공비토벌에 투입됐다. 장교가 모자라는 터라 소위가 중대장을 맡기도 했다. 특히 여순반란 진압작전 때는 6기생 소위가 중대장으로 출전, 지휘하다가 10명이 전사하고 말았다. 6·25 때 전사한 57명에 앞서 10명이 먼저 희생된 것이다.  임관과 동시 여순공비토벌 투입마지막까지 생존한 육사 6기생들은 정전 무렵에는 중령까지 진급했다. 대대장, 부연대장, 사단참모 등으로 활약하다가 대령으로 5·16을 맞았고, 그 후부터 별을 달기 시작했다. 동기생 중 유독 박경원(朴敬遠·강원) 장군만이 5·16 이전에 별을 달고 50사단장으로 나가 있었다. 6기생으로 장군이 된 사람은 추서 1명을 포함, 모두 19명이다. 준장 7명(추서 1포함), 소장 10명, 중장 2명으로 대장은 없다. 박현식(朴賢植·황해) 장군과 양봉직(楊鳳稙·충남 논산 상월) 장군이 중장까지 올라갔다. 박현식 장군은 6사단장을 거쳐 9사단장(백마부대장)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한 다음 육본 예비군 참모부장을 거쳐 국방대학원장을 끝으로 예편했다. 청렴 강직한 그는 5·16 군정 당시 서울시 교육감으로 발탁된 데 이어 나중에는 청와대 사정특보를 역임했다. 이어 박 대통령의 특명으로 내무부 산하 치안본부장 시절에는 말썽 많았던 경찰의 정보비를 말단 지서까지 어김없이 내려가도록 혁신했다. 그는 또 국가재건최고회의 시절 박태준 장군과 함께 6기생 중 나란히 최고위원으로도 발탁됐다. 선비 같은 성품에 청백리로 알려진 그는 여러모로 세속인들과는 다르다는 의미로 ‘도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현재 부산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경천중학교 전경
양봉직 장군은 1970년대 초 3선 개헌을 반대해 공화당을 탈당했던 양순직(楊淳稙) 전 의원의 친동생이다. 6·25 때 1사단 중대장, 대대장으로 전공을 세웠고 8사단장을 거쳐 1군단장으로 예편했다. 6기생은 5·16 당시 주체세력으로 참여한 사람이 없고, 대장을 배출하지 못했다는 점 등이 특징이다. 그것은 박태준, 박현식, 박경원 등 뛰어난 장군들이 일찍이 민간 분야에 차출돼 활약하는 바람에 아쉽게도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양순직의 또다른 동생인 양인직도 공주고를 거쳐 계룡산 주변인 충남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 423번지에 1969년 6월26일 학교법인 양지학원의 설립인가를 받고 경천중학교를 설립해 1969년 12학급을 인가받아 후진양성에 전념했다.
경천중학교는 전통의 명문고교인 공주고 전체수석 등 수 많은 인재를 배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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