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기능 노화가 큰 영향
거짓-진실 판단 뇌부위 약해져
‘추간판 탈출증’(허리 디스크)을 앓고 있는 A(68·여) 씨는 지난 7월 동네 친구들과 다녀온 효도관광에서 귀가 솔깃해지는 얘기를 들었다. 충남 금산 소재 모 사슴농장 홍보관을 방문했는데 자신을 한의사라고 소개한 남성으로부터 진맥을 통해 ‘허리가 안 좋다’는 진단을 받았다.
해당 한의사로부터 “‘비단’이란 나무줄기를 녹용 등과 달여 복용하면 허리통증을 잡는데 특효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은 A 씨는 효험을 기대하며 홍보관에서 판매하는 약재를 33만 원에 구입했다. 그러나 A 씨가 구입한 약재는 약효가 검증되지 않은 중국산 농산물로 만들어진 것으로 2만 원에 불과했다. 자신을 한의사라고 소개한 남성도 실제는 한의사 자격이 없는 사기단 일원이었고, 이들이 비단이라고 소개한 약재도 ‘담쟁이 넝쿨 줄기’였다.
뒤늦게 사기당한 사실을 깨달은 A 씨는 “진맥으로 아픈 곳을 짚어낸 한의사가 해당 약재를 추천한 것과 홍보관 관계자들의 그럴듯한 이야기에 속을 수밖에 없었다”고 후회했다.
최근 노인을 겨냥한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
건강식품 등 불법판매행위부터 신종 전화금융사기까지 범행수법도 다양하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1년 4만 2535명에 그쳤던 60대 이상 노인 대상 범죄가 2011년에는 7만 6624명에 달해 10년 새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지난 2011년 한국소비자연맹이 실시한 조사를 봐도,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7명이 ‘공짜여행이나 무료공연 후 상품 강매, 전화 금융사기 같은 사기피해를 경험한 적이 있다’라고 답했을 정도로 노인 대상 사기범죄가 만연해 있다.
살아온 만큼 축적된 경험을 통해 사람 보는 눈이 젊은이들에 비해 더 정확할 것으로 보이는 노인.
그런 노인들이 사기범죄에 취약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의문에서 출발한 한 연구가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UCLA) 셸리 테일러 박사 연구팀은 우리 몸이 노화하는 데서 그 원인을 찾았다. 연구 결과, 지혜로운 노인들일지라도 거짓말과 진실을 구분하는 뇌 영역의 기능이 갈수록 떨어져 사기를 당하게 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55~84세(평균 68세) 중·노년층 119명과 20대(평균 23세) 24명을 대상으로 30명의 다양한 얼굴 사진을 보여주는 실험을 진행했다.
제시된 30명의 얼굴을 보고 ‘얼마나 믿음직해 보이며, 얼마나 마음을 열고 다가갈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이는지’에 대해 각각 평가하게 했다. 연구진이 실험자들에게 제시한 보기는 ‘믿음직한 얼굴’, ‘그저 그런 얼굴’, ‘신뢰할 수 없는 얼굴’ 등 3가지였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믿음직한 얼굴과 그저 그런 얼굴을 선택한 비율은 중·노년층과 20대 모두 비슷했다.
하지만 ‘신뢰할 수 없는 얼굴’을 선택한 비율은 중·노년층과 20대 간 큰 편차를 보였다.
연구진이 제시한 신뢰할 수 없는 사진에 대해 20대는 대다수는 ‘신뢰하기 어렵다’라고 답한 반면, 중·노년층은 일부만 ‘신뢰하기 어렵다’라고 답했다.
연구팀은 “불량스러운 얼굴에는 쉽게 알아차릴 만한 단서가 나타나 있음에도 나이 든 층은 이를 간과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해당 실험을 통해 나이가 들수록 우리 뇌에서 혐오감과 경계심, 참과 거짓을 판단하는 뇌 부위(앞쪽 뇌섬엽, anterior insula)가 퇴화해 사기범죄에 취약해진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밝히고 있다.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는 뇌 부위의 반응이 젊은 층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것이 증명된 연구라 할 수 있다.
권순재·서지원 기자 press@gg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