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이희아 & 기타리스트 김지희

우리는 요즘 TV 등을 통해 장애인들의 뛰어난 음악성에 종종 감탄하곤 한다.
특히 우리는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아(28) 씨를 잘 기억한다.

그는 양손을 다 합쳐야 손가락이 4개뿐이고, 무릎 아래 다리마저 없는 선천성 1급 장애인.
일반인이 보기에 도저히 피아니스트란 생각을 갖기 힘들 정도지만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가는 곳마다 최고의 환호를 받고 있다.

지난 10일 대전에 있는 모 아트홀에서 개최되었던 메시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에서도 한 기타리스트의 연주에 모든 관중이 기립 박수를 보냈다.

당시 주목을 받은 주인공 역시 지적장애 2급 장애인.
이날 오케스트라 단원 73명이 참여한 웅장한 연주회에 특별히 초대 받은 장애인 피아니스트 김지희(20) 씨는 기타로 관혁악을 위한 변주곡 ‘낮에 나온 반달’을 연주해 단원들은 물론 홀을 가득 메운 관중들의 심금을 울렸다.

피아니스트 이희아씨
기타리스트 김지희 씨

◆ 태어나면서부터 세상과 조금 남다른 아이
이희아 씨는 태어날 때부터 ‘네 손가락’이 전부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선천성 기형으로 인해 막대기처럼 가늘게 붙어 있던 두 다리도 세살 때 절단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 후 선천성 1급 장애인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김지희 씨는 먹는 것도 말하는 것도 느린 아이였다. 엄마 김순도 씨는 “지희가 엄마라 처음 부른 것은 6살 때였다”고 전했다. 그는 “어려서 말하는 것뿐 아니라 모든 것이 다른 친구들보다 3, 4년이 늦었고, 초등학교 입학 후 친구들과 다른 점이 두드러졌으며, 초등학교 6학년 때 중학교를 가기위해 신체검사를 하면서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고 전했다.

◆ 그들에겐 음악에 대한 남다른 열정이 있었다
이희아 씨는 여섯 살이던 91년, 어머니가 연필이라도 쥐게 하려고, 피아노 연주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 피아노와의 인연이라고 전했다.

그 후 몸살로 앓아눕고, 네 손가락 끝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반복을 거듭해 교습 3개월 만에 ‘학교종이 땡땡땡…’을 연주했으며, 1년만인 1992년 전국 학생음악연주평가대회 유치부 최우수상, 1999년 장애극복 대통령상, 2000년 신지식인 청소년상 및 문화예술인상을 수상했다고 전했다.

김지희 씨는 2년 전까지만 해도 그림을 좋아하는 고등학생이었다.

그는 2년 전 기타를 처음 접했고, 그 후 손에 물집이 생기도록 노력 끝에 1년만인 지난 2012년 10월 대전의 모 방송국이 주관한 전국장애학생음악 콩쿠르에서 고등부 관현악 부문 금상을 수상했다. 지난 7월 서울에서 개최된 전국장애청소년예술제에선 장려상을 수상했고, 또 8월 평창에서 개최된 평창스페셜뮤직페스티벌에선 1위를 차지했다. 그 외에도 지난 11월 대구에서 개최된 무지개예술제에서 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그들 뒤엔 든든한 버팀목이 있었다
피아니스트 이희아 씨와 기타리스트 김지희 씨가 있기까지는 남다른 부모의 열정이 있었다.

이희아 씨 어머니 우갑선 씨는 “6살 때 희아에게 연필이라도 쥐게 하려고, 피아노 연주를 가르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 지금의 희아를 낳았다”고 회고하며 “희아가 처음으로 ‘학교종이 땡땡땡…’을 끝까지 연주했을 때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얘기를 다 듣지 않아도 그동안의 고통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 67년 대간첩작전에서 척추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가 된 장애인으로 장애인용 자동차를 운전하는 이희아 씨 아버지 이운봉 씨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희아 씨를 유치원과 학원을 데리고 다녔다”며 그동안 살아온 과정을 얘기했다.

김지 희씨 부모 역시 열정이 남달랐다.

한때 세무공무원이던 김지희 씨 엄마 이순도 씨는 “지희가 다른 학생보다 좀 늦다는 생각만 해 오다 장애라는 결과를 받았을 때 넘 힘들었다”면서 “지희의 발이 되고 도우미 역할을 하며 고단함도 있지만 지희가 장애가 있는 친구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가슴이 벅차오를 뿐”이라며 “잘돼서 훌륭한 기타리스트가 됐으면 하는 것이 최고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도 지희를 위해 전국의 콩쿠르를 찾아다닌다”면서 “나중에 지희가 그린 그림을 모아두고 전시를 하면서 그곳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지희가 직접 연주하는 곡을 들려주는 것이 바람”이라고 말했다.
지희 씨 뒤엔 든든한 버팀목인 아빠도 있었다. 그동안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 할 정도로 업무에만 심혈을 기울여온 김태식 충주세무서장이 장본인.

김 서장은 그동안 장애소녀 지희 씨가 옆에 있었음에도 아무도 모를 정도로 업무에만 열중하고 휴일에만 가족들과 함께 지희 씨를 위해 헌신해온 인물. 이를 두고 세정가 일각에선 “깜짝 놀랐다”며 뜨거운 동정을 보내고 있다.

◆ 최종 목표는 ‘장애인에게 희망을’
이들의 공통점은 같은 아픔을 안고 있는 장애소년소녀에게 ‘희망’을 나눠주는 일이었다.
이희아 씨는 지난 5일 오후 세종시에서 개최된 ‘세종 장애인식개선 예술행사’에 참석해 자리를 메운 관중들에게 심금을 울렸다.

그는 지난 97년 국내장애인을 위한 독주회를 열어 얻은 수익금 1000만 원을 장애인단체에 기부했고, 요즘은 전국을 찾아다니며 장애인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김지희 씨도 희망을 선사하는 각종 연주회에 출연해 따뜻함을 전하고 있다.

그는 지난 2월에 개최된 평창 동계스페셜올림픽 성화 소화 시 독주를 해 참석자들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그 외에도 지난해 대전문화예술의 전당에서 개최된 갈리콘서트, 서울 예술의 전당 IBK 챔버홀에서 개최된 사랑나눔 위캔 행사, 대전 서구챔버오케스트라와 협연 연주 증 수많은 행사에 초대돼 기타음악의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하고 있다.

또 지난 8일 서울에서 개최된 ‘투게더 위캔’ 행사에 참석해 장애 아동과 부모들에게 희망을 선사하기도 했다.

앞으로 본인이 그린 그림을 전시하고 그 옆에서 기타를 연주해 주는 것이 꿈이라는 지희 씨가 살포시 웃으며 선사한 ‘first shoes’는 지켜보는 사람의 가슴이 찡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정장희 기자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