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흥안씨 1파의 파조들

직장공파(直長公派) 파조(派祖)는 10세 수(琇)로서 4세인 문성공(文成公) 안향(安珦)의 6대손이며, 판서공(判書公) 안종약(安從約)의 3남(男)이다. 공양왕 2년(1390년)에 태어났으며, 문과에 급제해 군자감의 직장(直長, 7품)을 지냈다. 벼슬을 그만두고 경기도 파주에 거주했고, 문장과 학행이 당세 명유로 지칭 받았다.
직장공의 당질인 정민공 안당의 신사무옥으로 화가 미쳐오자 춘천으로 피신했다. 동생은 춘천에 남고 형들은 경남 함안으로 피난을 와서 그 후손들이 함안과 창원 등지에서 번성하고 있다.
<서파공파(西坡公派)>
서파공파(西坡公派) 파조(派祖)는 10세 리(理)로서 4세인 문성공(文成公) 안향(安珦)의 6대손이며, 판서공(判書公) 안종약(安從約)의 4남(男)이다. 조선 태조 2년(1393년)에 출생했고 호가 서파(西坡)이다.
벼슬하기를 좋아하지 않아 후에 예천군수(郡守, 종4품)를 지냈으나 단종이 손위되자 곧 벼슬을 버리고 순흥 대룡산에 들어가 두문독서하면서 자손들에게 벼슬하지 말 것을 유명(遺命)했다.
<감찰공파(監察公派)>
감찰공파(監察公派) 파조(派祖)는 9세 종례(從禮)로서 4세인 문성공(文成公) 안향(安珦)의 5대손이며, 경질공(景質公) 안원(安瑗)의 차남이다. 감찰공은 고려 공민왕 8년(1359년)에 출생해 공양왕 1년(1389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사헌부 감찰이사 및 양주목사를 역임했다. 태조와 태종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고 서원에서 은거하다가 세종 11년(1429년) 향년 71세로 타계했다.
<첨추공파(僉樞公派)>
첨추공파(僉樞公派) 파조(派祖)는 9세 종의(從義)로서 4세인 문성공(文成公) 안향(安珦)의 5대손이며, 경질공(景質公) 안원(安瑗)의 3남이다. 성균관의 생원(生員)이며 벼슬은 첨지중추부사(정3품 당상관)를 지냈다.
후손들 가운데는 왕조실록에 자주 나오는 공조참의(정3품 차관보) 요경(堯卿), 임란과 병자호란때 공을 세운 분이 많다.
<도정공파(都正公派)>
도정공파(都正公派) 파조(派祖)는 9세 안종렴(安從廉)으로 4세인 문성공(文成公) 안향(安珦)의 5대손이며, 경질공 안원(安瑗)의 4남이다. 벼슬은 돈녕부의 도정(都正, 정3품 당상관)을 지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태조의 개국을 부정하며 다음 대(代)를 이을 왕위마저 뿌리치고 숨어버린 진안대군 이방우(李芳雨)의 사위로 기록됐다.
<참판공파(參判公派)>
참판공파(參判公派) 파조(派祖)는 9세 종신(從信)으로 4세인 문성공(文成公 諱 珦)의 5대손이며, 경질공안원(安瑗)의 5남이다. 벼슬은 전라도 관찰출척사(觀察黜陟使, 고려 말 조선 초의 지방 행정장관의 명칭으로 종2품 관찰사의 옛 명칭)를 지냈다. 가선대부(종2품 품계)로 병조참판(參判, 종2품 국방차관)을 추증받았다. 한일합방의 원흉 이등박문을 암살해 여순 감옥에서 돌아가신 안중근의사가 참판공 후예다.
<참의공파(參議公派)>
참의공파(參議公派) 파조(派祖)는 9세 안종검(安從儉)으로 4세인 문성공(文成公), 안향(安珦)의 5대손이며, 경질공 안원(安瑗)의 6남(男)이다. 참의공은 통정대부(정3품 당상관 품계)로 공조참의(參議, 정3품 차관보)를 지냈다. 도산 안창호(安昌浩)선생이 참의공 후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