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 '소수서원'

안향(安珦)은 고려 말 개혁세력이던 지방 중소지주 출신으로, 독서인들의 이념체계인 주자학을 도입 소개한 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고려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불교의 관념적, 현실부정적 철학을 극복하기 위해 원(元)에 유학, 중세 봉건사회의 보편적 세계관을 표방하는 주자학을 도입 소개해 고려 말기의 유학진흥에 크게 공헌했다.

불교는 인륜관계를 무시한 오랑캐의 종교라고 혹독하게 비판하고, 효(孝), 충(忠), 신(信), 경(敬), 성(誠) 등의 유학적 덕목을 강조했다.

고려말 유학 진흥에 큰 공적을 세워 문묘(文廟)에 배향하게 했으며, 그의 영정을 그려 순흥향교에 모시게 돼 국보 제111호로 지정, 소수서원에 소장됐다.

특히 그의 문하(門下)에서 백이정(白頣正),우탁(禹倬) 등 훌륭한 유학자를 배출, 이제현(李齊賢), 이색(李穡) 등에 의하여 계승됐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朱子學者)로 훌륭한 업적을 남겨 장단(長湍)의 임강서원(臨江書院)과 순흥의 소수서원(紹修書院), 곡성(谷城)의 회헌영당(晦軒影堂)에 제향됐다.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위치한 제55호 소수서원(紹修書院,백운동서원)
▲제55호 최초의 서원 소수서원(紹修書院,백운동서원)
1541년(중종 36년)에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周世鵬)이 이듬해에 이곳 출신 유학자인 안향(安珦)을 배향하기 위해 사묘(祠廟)를 설립했다가, 1543년 유생교육을 겸비한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설립한 것이 이 서원의 시초이다.

1544년에는 안축(安軸)과 안보(安輔, 1302년(충렬왕 28년)∼1357년(공민왕 6년),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관동별곡을 지은 안축의 아우)를 추가 배향했다. 1546년(명종 1년)에 경상도관찰사(종2품 감사)로 부임한 안현(安玹, 1501(연산군 7년)∼1560(명종 15년),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중진(仲珍), 호는 설강(雪江))은 서원의 경제적 기반을 확충하고 운영방책을 보완하는 데 주력했다.

그는 사문입의(斯文立議, 지방관과 영주지역 사림이 소수서원의 제반운영에 대하여 논의하여 그 시행안을 세운 것으로 일종의 운영지침)를 마련해, 서원의 향사(享祀, 제사)에서부터 학전(學田)과 서적의 운용 및 관리, 노비와 원속(院屬)의 관리 등 서원 운영, 유지에 필요한 제반 방책을 마련했다.

1548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이황(李滉)은 서원을 공인하고 나라에 널리 알리기 위해 백운동서원에 대한 사액(賜額)과 국가의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1550년에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 사액되고 아울러 국가의 지원도 받게 되었다. 이 밖에도 임금은 대제학(정2품) 신광한(申光漢)에게 명하여 사서오경(四書五經)과 성리대전(性理大全) 등의 서적을 하사했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