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신 안준, 정몽준 일당으로 몰려 유배

태조가 충절 감명 배소 예천으로 옮겨줘

안영린의 후손인 안문개(安文凱, 1273∼1338년)는 심양왕고(瀋陽王暠)의 일로 원나라에 불려가 4년 동안 억류돼 왕을 위한 경비를 국내에서 염출해 조달했다.

왕을 따라 귀국한 뒤에 첨의참리(僉議參理, 종2품)가 됐고, 1327년(충숙왕 14년)에는 왕이 원나라에 있을때 충절을 바친 공으로 1등공신이 됐으며, 순흥부원군(順興府院君)의 호를 받았다.

1330년(충혜왕 즉위년) 지공거(知貢擧, 고려때의 과거시험관)가 돼 송천봉(宋天鳳), 홍언박(洪彦博), 이달존(李達尊), 이문정(李文挺), 최재(崔宰), 정운경(鄭云敬)등 33인과 옥대(玉帶, 관리의 공복에 두르던 옥으로 장식한 띠)를 하사받았다.

문의공 질재 안문개(安文凱 質齋 文懿公, 1273~1338년)는 1321년 좌대언(左代言, 궁중을 숙위하고 정령을 출납하던 밀직사의 정3품)에 올랐다. 그해 충숙왕이 심양왕 고의 무고로 원나라에 4년간 억류돼 함께 있으며 국난극복에 힘썼다. 1325년 충숙왕과 함께 귀국해 첨의참리(僉議參理, 종2품)를 거쳐 삼중대광(三重大匡, 정1품 품계)으로 좌정승(左政丞, 종1품 재상)에 올라 지공거(知貢擧, 과거를 주관하던 시험관)를 겸임했다. 1388년 찬성사(贊成司, 정2품 부총리)때 세상을 달리했다.

안준(安俊)은 고려말의 충신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며,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文臣)이다. 호는 노포(蘆浦)이고 아버지는 중랑장(中郞將, 정5품)을 지낸 안손주다.

고려말에 문과(文科, 대과)에 급제해 우왕(禑王) 때 남양부사(南陽府使, 정3품 수령)와 판봉상시사(判奉常寺事) 등을 거쳐 1385년(우왕 11년)에 전라, 충청, 경상삼도도체찰사(三道都體察使, 전시에 임명된 총사령관)를 지냈다.

고려 멸망과 조선건국기의 정치상황은 최영(崔瑩)과 이색(李穡)의 집정세력을 차례로 제거한 이성계계(李成桂系), 정몽주계(鄭夢周系), 조준계(趙浚系)의 협력정권이 형성돼, 이성계의 즉위에 앞서 정몽주계열에 대한 숙청이 있었다.

1392년(공양왕 4년) 정몽주가 살해되자, 그 일당으로 몰려 우현보(禹玄寶), 김진양(金震陽) 등과 함께 의령(宜寧)으로 유배됐다. 같은 해 조선이 개국되자 그의 충절을 가상히 여긴 태조(太祖)에 의해 배소(配所, 귀양살이 하던 곳)를 예천(醴泉)으로 옮기게 됐고 그곳에서 사망했다.

용궁(龍宮, 경상북도 예천)의 기천서원(箕川書院)에 배향됐다.
안향의 손자는 문과(文科, 대과)에 급제해 정당문학(政堂文學, 중서문하성의 종2품 재신), 판전교시사를 지내고 순흥군(順興君)에 추증된 안목(安牧)이며, 증손대에서 안원숭(安元崇), 안원형(安元衡), 안원린(安元璘) 3형제가 있다.

안목(安牧, 공민왕 9년)은 고려 후기의 문신(文臣)으로 자는 익지(益之), 호는 겸재(謙齋)다. 할아버지는 삼중대광(三重大匡, 정1품 품계)으로 도첨의(都僉議)에 오른 안향(安珦)이고, 아버지는 검교찬성사(檢校贊成事, 정2품 부총리)에 오른 안우기(安于器)다.

문과(文科, 대과)에 급제해 충숙왕(忠肅王) 때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 고려 후기에 유교 경전을 비롯한 여러 도서를 보관)를 거쳐, 1330년(충숙왕 즉위년) 대언(代言), 이군해 등과 함께 인사권을 관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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