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 측근 간신 제거, 국세 바로잡아야"
담론 중 세상 비판 언사 많았던 안처겸

안씨(安氏)의 역사상 대표적 인물이며, 주자학(朱子學)의 태두인 문성공(文成公)은 1파(派)인 안영유(安永儒)의 손자이다. 

고려시대에는 안유(安裕, 1243년, 고종 30년)∼1306년(충렬왕 32년), 고려 후기의 문신·학자, 경상북도 흥주(興州, 영주시 풍기) 출신으로 자는 사온(士蘊)) 외(外)에 안문개. 안축 등 많은 인물을 냈고, 조선시대에도 상신(相臣,정1품 정승) 2명, 호당(湖堂,독서당) 2명, 청백리 2명, 공신 2명, 장신 1명, 문과 급제자 116명을 배출했다. 근현대 인물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독립운동가인 안창호 등이 모두 순흥안씨 집안이다. 순흥안씨의 창원 입향조(入鄕祖)는 안명갑(安明甲)이다. 순흥안씨 2대 안영유를 파조(派祖)로 하고, 거기에서 다시 갈라진 직장공파(直長公派)의 파조(派祖) 안수(安琇)의 후손이다.

안수(安琇)는 안자미의 10세손으로 군자감(軍資監, 군사상에 필요한 물자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의 직장(直長, 정·종7품)을 지냈다.

서울 출신의 안당(安瑭,1461 세조 7년)∼1521년 (중종16년).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언보(彦寶), 호는 영모당(永慕堂))은 성종 때 친시문과(親試文科, 임금이 몸소 과장에 나와 시험 성적을 살피고 급제자를 정하던 일)에 급제, 중종 때 형조, 공조, 이조(吏曹)의 판서(判書, 정2품 장관)를 거쳐 우의정(右議政, 정1품 정승)에 오르고 좌의정(左議政, 정1품 정승)이 되었는데, 1521년 신사무옥(辛巳誣獄)으로 아들 안처겸(安處謙, 1486년 성종 17년)∼1521년(중종 16년), 자는 백허(伯虛), 호는 겸재(謙齋))이 처형당할 때 사사(賜死)됐다.

안처겸(安處謙,1486년 성종 17년)∼1521년(중종 16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文臣)으로 안경(安瓊)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안돈후(安敦厚)이고, 아버지는 좌의정(左議政, 정1품 정승)에 오른 안당(安瑭)이며, 어머니는 전의이씨(全義李氏)로 경원부사(府使, 정3품 수령)를 지낸 이영희(李永禧)의 딸이다.

1513년(중종 8년)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성균관(成均館)의 학유(學諭, 종9품) 관직으로 정원은 3명)를 거쳐 1517년 8월 장의(掌議, 성균관, 향교에 머물러 공부하던 유생의 임원 가운데 으뜸 자리)로 있으면서 정몽주(鄭夢周)의 문묘배향과 소격서(昭格署, 조선시대에 도교의 보존과 도교 의식을 왜해 설치한 예조(禮曹)의 속아문(屬衙門))의 폐지 등을 건의했다.

1519년 아우 안처함(安處諴), 안처근(安處謹)과 함께 현량과(賢良科, 조선 중종때 정암 조광조의 건의에 따라 전국 각 군으로부터 어질고 선량한 인재를 천거하게해 이들에게 책문을 시험, 성적이 우수한 자를 선발했음)에 3등으로 급제했으나, 모친상을 당해 벼슬을 그만뒀다.

1521년 상복을 벗고 처가에 있으면서 이웃에 사는 시산군(詩山君), 이정숙(李正叔), 권전(權磌) 등과 더불어 담론(談論,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하다가 세상을 비판하는 말을 많이 했는데, 그 중 군주(君主) 측근의 간신을 제거해 국세를 바로잡고 사림을 위로해야 한다는 등의 언사가 있었다.

이 때 송사련(宋祀連, 1496 연산군 2년)∼1575년 (선조 8년)도 함께 담론했는데, 그는 남곤(南袞)과 심정(沈貞)에게 아부해 상을 얻고 자기의 처남인 정상(鄭鏛)을 시켜, 간신은 곧 남곤·심정을 지칭하는 것이라 하며, 그 당여의 증거물로 안처겸의 모친상때의 조문록 및 역군명부(役軍名簿)를 가지고 고변하게 했다. 이로써, 대신을 살해하려 했다는 죄목으로 아우 안처근과 함께 처형을 당했다. 1540년에 신원(伸寃, 억울함을 풀음)됐다.

이때 뒷날을 걱정한 교위(校尉) 안창공(安昌恭)은 가솔을 이끌고 함안 모곡(茅谷)으로 이거하게 된다.
그의 3세손 안민(安慜, 1539~1592년)은 임진왜란 때 금릉에서 순절하고, 안민의 큰아들 안신갑(安信甲, 1564~1597년)은 정유재란 때 산음에서 전사한다. 그 후 안민(安慜)의 작은아들 안명갑(安明甲)이 창원의 퇴촌으로 장가를 들어 이곳에서 세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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