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왕족 성씨 중 하나 ‘삼한갑족’ 이라 불려
<三韓甲族: 예로부터 대대로 문벌이 높은 집안>

’경주김씨(慶州金氏)는 신라 왕족의 3성씨(박·석·김)가운데 하나로 삼한갑족(三韓甲族)으로 불린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의하면 시조 알지(閼智)는 영평3년 8월4일에 호공이 월성의 서리(西里)를 걷고 있을 때 큰 빛이 시림속에서 나오는데 자주색 구름이 하늘에서 땅으로 뻗쳐있었다.
그 구름속에는 황금궤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다. 금궤에서 빛이 나오고 나무 밑에서는 흰 닭이 울고 있었다. 보고를 받은 탈해왕은 친히 숲으로 행차해 궤를 열어 보았더니, 사내아이가 누워있다가 곧 일어났다. 왕은 사내아이를 안고 대궐로 들어오니 새와 짐승들이 따라와 춤추고 뛰놀았다고 한다. 시림의 금궤에서 나왔다 해 성을 김(金)으로 했고, 우리말 ‘아기’ 라는 뜻의 ‘알지’라고 이름 했다. 왕은 ‘하늘이 내린 아들’이라 해 훌륭히 키웠다.
알지는 태자에 책봉돼 왕위에 추대됐으나, 끝내 사양하고 파사대왕에게 양보했으며, 알지의 6세손인 미추왕을 시작으로,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알지의 28세손)이 서기 935년 천년사직인 신라를 고려에 손국할때까지, 38대왕을 상계해 선원세계(璿源世系)를 계승했다.
경주김씨는 경순왕의 아들 9형제 중 셋째 아들인 영분공 김명종(金鳴鍾, 영분공파)과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 대안군파)을 1세조로 받드는 계통이 대표적이며, 고려때 대장군 김순웅은 경순왕의 넷째아들 대안군 김은열의 후예로 전해오다가 경순왕의 첫째 아들인 마의태자 김일의 후손으로 확인이 됐다고 한다. 태자의 아들인 김선웅과 김순웅은 마의태자가 강원도 설악산 등지에서 신라를 되찾기 위한 항려(抗麗)운동을 할때 큰할아버지인 김억렴의 슬하에서 자랐다고 한다.
차남 김순웅(金順雄) 대장군(大將軍, 종3품)을 1세조로 받드는 대장군파(大將軍派), 2009년 9월에 결성된 태자파(太子派, 마의태자를 1세조로 받듦), 김순웅의 13세손으로 좌찬성(左贊成, 의정부 종1품 재신)에 오른 김균(1341~1398년)을 1세조로 받드는 계림군파(鷄林君派), 병판공파(兵判公派, 김은열의 14세손), 백촌공파(김은열의 17세손 김문기), 판도판서공파(版圖判書公派, 김은열 후손 김장유), 태사공파(太師公派, 김은열의 후손 김인관·고려 예종때 위위시경 검교 태자태사 정1품), 상촌공파, 장사랑공파(은열의 16세손 김존일) 등 크게 6파(派)로 갈라졌으며, 후대로 내려오면서 10여개의 지파(支派)로 나누어졌다.
한편 마의태자(麻衣太子)는 신라 제56대 왕인 경순왕과 죽방왕후 박씨의 맏 아들이며 이름은 김일(金鎰)이다. 마의태자의 이칭은 개골산에서 마(麻)로 옷을 입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강원도 인제에서 국권회복을 도모하고자 신라소국을 세우고 김부(金富)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김부(金富)는 개명(改名)이 아닌 뜻이 통하는 한자를 취해 만든 이름으로 당시 향찰 표기법에 의하면 같은 이름이다. 금부대왕(김부대왕)이란 명칭은 김일(金鎰)의 또 다른 이름인 김부(金富)에서 유래됐다. 야성김씨, 경주김씨 대장군공파, 청풍김씨, 경주김씨 계림군파는 마의태자의 후손을 시조로 한다. 청풍김씨는 마의태자 김일의 차남인 대장군공 김순웅의 12세손인 고려말의 문하시중(門下侍中, 종1품 정승) 김대유(金大猷)를 시조로 받들고 있으며, 경주김씨 대장군공파는 경순왕의 첫째아들인 마의태자(麻衣太子) 차남으로 고려때 대장군(大將軍, 종3품)에 이어 상장군(上將軍, 정3품)에 오른 김순웅(金順雄)을 1세조로 받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