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국 상무/총괄국장

매일 통행하는 도로가 있다. 편도 2차선인 이곳은 1차선은 좌회전 전용이며, 2차선은 직진과 우회전 병행 차선이다. 좌회전 전용인 1차선에서 직진 신호 대기는 차선 위반이라 2차선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우회전 차량의 도발은 감내하기 힘들 정도로 대단하다.
1차선 쪽으로 차를 움직여 우회전을 가능하게 해주려니 횡단보도를 침범해야 하고, 보행자의 통행을 막게 되니 이는 바람직한 선택이 아니다. 그래서 규칙대로 꿋꿋이 버티지만 고막을 찢을 듯한 날카로운 경적 소리와 뒤통수를 가격하는 전조등 불빛은 파란불이 들어올 때까지 엄청난 스트레스다. 이 스트레스는 매일 반복된다.
지금 목하 고민 중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과연 교통법규를 지켜야 되는 건가. 요즘같이 흉포(凶暴)한 세태에 비추어 행여 길을 터주지 않는다고 흉기라도 휘두르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내자(內子) 말대로 조금 돌아가더라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하는가.
법규를 준수하며 살아가는 것이 이렇게 힘이 든 것은 아이러니다. 혹시 이 사회가 비뚤어진 기준에 함몰돼 평범한 소시민의 준법질서 의식마저 보잘것 없는 것으로 도외시하고, 그런 모범을 마치 고지식한 행동으로 치부(置簿)하는 정상의 궤도를 이탈한 기준도 없는 사회로 변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스쳐간다.
오로지 자신의 기준으로 제멋대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회라면 ‘나는 무엇이든 해도 되는 세상'을 만나게 된다. 우회전을 해야 하는 운전자에게 도로는 우회전을 위해 반드시 열어 놓아야 되는 차선이 되고 만다.
좁은 공간에서의 흡연도 내 기준으로는 충분히 넓은 공간이며, 이 정도 연기는 건강이 견딜 수 있는 수준이므로 피워도 된다. 내가 너의 인사고과를 책임진 상급자이며, 내게 호감을 가진 것 같으니 성추행, 성희롱 정도는 해도 괜찮다. 세월호 참사도 이런 사고(思考)가 사회에 남긴 부작용이고, 그동안 경험한, 경험할 대형 사고, 상식을 벗어난 안타까운 사연들도 마찬가지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은 채 제 본분을 다하며, 우리 사회가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잘 굴러갈 수 있도록 기여하는 말 없는 다수의 작지만 큰 몸짓들이 더 이상 아주 사소한, 무시해도 좋은 것들로 평가절하돼서는 안 된다. 본분을 다하며, 준법을 몸소 실천하는 양식 있는 행동이 되레 이상하게 보이는 사회라면 이미 그 사회는 치유불능의 병든 사회며, 비참한 결말을 노정(露呈)하고 있는 셈이다.
로마신화 ‘케피소스 강가의 침대와 나그네’에 등장하는 섬뜩한 이야기 ‘프로크루테스의 침대’가 생각난다. 강도 프로크루테스는 나그네를 붙잡아 와 침대에 눕혀서 침대보다 키가 크면 다리와 머리를 잘라 죽이고, 침대보다 작으면 키를 억지로 늘여서 죽였다. 침대라는 ‘기준’에 사람의 키를 억지로 맞추려는 이 비정상의 시도는 보편적 사회 가치 기준에 반해 자신의 기준으로만 모든 것을 보고, 평가하고, 행동하는 무모함과 다를 바 없다.
이 프로크루테스는 영웅 테세우스에게 붙잡혀 똑같은 방식으로 죽음을 당한다. 이 비참한 결말은 프로크루테스적 삶이 비등한 우리 사회가 반추(反芻)해 경계와 교훈으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세상사 모든 것을 자신의 기준에 맞추어 제멋대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프로크루테스적 사회는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