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가로 필명 날렸던 유진오 · 사회적 리얼리즘 거장 유현목 감독

문학가로 필명 날렸던 유진오

유진오(兪鎭午, 1906~1987년, 호는 현민)는 서울 출생으로 아버지는 궁내부 제도국 참사관 유치형(兪致衡)이다. 1914년 서울 재동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으며, 1919년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졸업 후 1924년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입학했고, 1926년 동대학 법문학부 법학과에 입학해 졸업한 뒤 1929년 4월부터 1933년 3월까지 동대학 법문학부 조수로 있으면서 예과에 강사로 나갔다.

1933년 4월부터 보성전문학교(고려대) 전임강사가 돼 1936년 4월 교수가 됐다. 1945년 광복 후 잠시 경성대학 법문학부 교수를 겸했으나 고려대학교에 남아 법정대학장(1946∼1949년), 대학원장(1949∼1952년), 총장(1952∼1965년)을 역임했다.

한편, 법전편찬위원회 위원(1946∼1950년)으로 ‘대한민국 헌법’을 기초했고, 법제처장(1948∼1949년), 고등고시위원(1949∼1955년), 6·25전쟁 때 부산 전시연합대학 총장(1951년), 한일회담 한국측 대표(1951∼1952년), 대한국제법학회장(1953∼1968년), 한국공법학회장(1957∼1961년), 한국법철학회장(1957∼1965년), 대한교육연합회장(1960∼1965년), 국가재건국민운동본부장(1961년)을 역임하면서 교육, 문화, 사회의 다방면에서 활동했다.

1955년 연희대학교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54년부터 학술원 종신회원이 됐다. 고려대학교 총장직을 은퇴하고 야당 정치활동에 투신하여 민중당 대통령후보(1966년)가 되었고, 신민당 총재(1967~1970년)와 국회의원(1967~1971년)을 지냈다. 1983년부터 투병생활을 하다가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별세했다.

법학을 공부하고 일제강점기에는 문학가로서 필명을 날리기도 하였던 그는 광복 후 헌법학자로 헌법해의(憲法解義 1949년), ‘헌정의 기초이론(1950년)’, ‘헌법강의(1953년)’, ‘헌법기초회고록(1981년)’등의 저서와 ‘민주정치에의 길(1963년)’, ‘양호기(養虎記, 1977년)’, ‘미래를 향한 창(1978년)’, ‘구름 위의 만상(漫想)’ 등의 저서가 있다. 문학작품으로 ‘창랑정기, 김강사와 T교수‘ 등도 널리 알려졌다. 
 

사회적 리얼리즘 거장 유현목 감독 

유현목(兪賢穆, 1925~2009년)은 한국의 영화감독으로 사회적 리얼리즘의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황해도사리원시 출생으로 동국대학교 국문학과에 진학했다. 동국대 재학 중인 1947년에 이규환의 조감독이 돼 영화계에 입문했다.
데뷔작은 1956년 발표한 ‘교차로’이다. 이후 대표작인 ‘오발탄(1961년)’으로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부상했다.

이 영화는 이범선의 원작을 영화한 것으로, 한국 영화의 중흥기를 불러온 의미 있는 작품으로 꼽힌다. 사회고발적인 비판의식이 포함된 영화로 해방촌에 살고 있는 월남 피난민 가족을 소재로 삼고 있다.
박경리 원작 ‘김약국의 딸들(1963년)’, 손창섭 원작 ‘잉여인간(1964년)’, 김은국 원작 ‘순교자(1965년)’, 황순원 원작 ‘카인의 후예(1968년)’, 윤흥길 원작 ‘장마(1979년)’, 이문열 원작 ‘사람의 아들(1980년)’ 등 대표작들은 대부분 소설을 영화한 것이었다.

주로 다룬 주제는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과 실향민이자 이산가족으로서 절실하게 느꼈던 이념 갈등에 대한 묘사이며, ‘순교자’와 ‘사람의 아들’에서와 같이 구도와 신앙의 본질 문제에도 관심을 가졌다. 기법적 측면에서는 순수한 사실주의라기보다는 다양한 기법을 실험해 모더니스트, 표현주의자라는 평을 들었다.
 
진지하고 장중한 주제 선택과 사회 비판을 위한 도구로서의 영화관, 그리고 세련된 연출 솜씨가 특징이다. ‘대한민국 영화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작품을 만들었다’는 평도 있을 만큼 한국 영화계의 거목으로 인정받고 있다. ‘3·1문화상’도 수여받았다.

김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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