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과 쌍벽' 문학 거인 유한준

 

'박지원과 쌍벽' 문학 거인 유한준

<저암공 유한준>

저암공 유한준 영정
유한준(兪漢雋, 1732년~1811년, 순조11년), 초명은 한경(漢炅), 호는 저암(著菴)이다. 유만주(兪晩柱)의 아버지이며, 구당 유길준(矩堂 兪吉濬)의 5대조이다.
1768년(영조 44년)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한 후 김포군수(郡守, 종4품 수령) 등을 거쳐 형조참의(刑曹參議, 정3품 법무부 차관보)에 이르렀다.
남유용의 제자로 우암 송시열을 추모해 평생동안 송자대전(松子大全)을 열심히 보았다고 한다.

당대의 뛰어난 문장가로 손꼽혔으며 저술로는 저암집(著菴集)이 있다.
유한준(兪漢雋)은 그림에도 소질이 있었다고 하는데 유작이 없어 그 수준을 알 수 없다. 그러나 당시 화가들의 그림에서 유한준(兪漢雋)이 쓴 제발문(題跋文)이 많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화가들과 상당한 교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유한준(兪漢雋)의 초상화는 69세 때 즉 1800년(정조24년)에 그려진 것으로, 화폭 안 우측상단에 상찬(像贊)이 단아한 글씨체로 써 있고 끝에 전서체로 된 2개의 낙관이 찍혀 있다.
초상화의 그림을 누가 그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낙관의 글자가 각각 만(曼)과 천인 것으로 보아 상찬은 초상화의 주인공인 유한준(兪漢雋) 자신이 쓴 글로 생각된다.

상찬의 내용은 “저공육십구세진 비차옹이수여 약사호처정지기상이성(즉)칙범은 약유망원지사려이심야소사 기소이평생지유로 비고비금비실비허비도비선비은비방야어(著公六十九歲眞 非此瓮而誰歟 似乎處靜之氣像而性則汎隱 若有望遠之思慮而心也疏斯 其所以平生之攸盧 非古非今非實非虛非道非禪非隱非放也於)로, 소탈하고 대범한 유한준(兪漢雋)의 성격과 유유자적하는 자신의 생활태도 등을 나타내고 있다.
유한준은 18세기 당대 문학의 거인으로서 ‘향후 백년간은 이런 작품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라는 평가에서 알 수 있다. 당시 문단의 연암 박지원과 쌍벽을 이루었던 것이다.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유언호

<충문공 유언호>

충문공 유언호 영정.
유언호(兪彦鎬), 1730년(영조6년)~1796년(정조20년), 자는 사경(士京), 호는 즉지헌(則止軒), 시호는 충문(忠文)이다.
한성부의 우윤(右尹, 종2품 서울시장)을 지낸 유직기(兪直基)의 아들이고, 영의정(領議政, 정1품 정승)을 지낸 유척기(兪拓基)의 당질(堂姪)이다.
1761년(영조37년) 문과(文科, 대과)에 급제해 벼슬을 시작한 뒤 사간원과 홍문관의 관리를 역임했다. 왕세손 시절의 정조를 잘 보좌해 정조 즉위 후 왕의 총애를 받았다.
규장각(奎章閣) 창설에도 간여해 규장각 창립당시 규장각의 직제학(直提學, 정3품)에 임명됐다.

이조참의(參議, 정3품 차관보), 개성유수(留守, 2품 지방장관), 평안감사(監司, 종2품 관찰사)를 거쳐 1787년(정조11년) 의정부의 정1품 정승인 우의정(右議政), 1795년 좌의정(左議政, 정1품 정승)에 임명됐다.
정조의 뜻을 잘 보좌하고 탕평책을 옹호한 인물로 평가된다.
김종수와 친하게 지냈으며 함께 정조의 묘정(廟廷)에 배향됐다.

참고로 여러 가지 벼슬을 하시던 중 개성유수로 가셨던 까닭은 선대부터 좋지않게 지내던 ‘연암 박지원’을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자원했던 것임이 여러 문헌등을 통해 밝혀져 있다.
유언호(兪彦鎬)의 초상화는 58세 때 즉 1787년(정조11년)에 그려진 것으로 상찬(像贊)은 정조가 지었으며 어진(御眞)화가 이명기가 그렸다.
이명기는 당대의 유명한 화원으로 특히 초상화를 잘 그렸다고 한다.

1787년 우의정(右議政, 정1품 정승)에 임명된 후 정조가 유언호(兪彦鎬)의 초상화를 그려 바치도록 명령하고 친히 찬문을 지어 내려주었다.
화폭 상단 별도의 여백에 정조가 지은 상찬이 삽입돼 있는데,‘상견우이 선복어몽 일현일위 시차백중(相見于禽 先卜於夢 一弦一韋 示此伯仲)’ 이라고 해 김종수와 유언호(兪彦鎬)의 돈독한 우정을 기리는 한편, 유언호(兪彦鎬)에 대한 정조의 총애를 나타내고 있다.

화폭 안 좌측 하단에 ‘숭정삼정미화관이명기사(崇禎三丁未畵官李命基寫)’라고해 초상화 제작 년대와(1787년) 화가 이명기를 밝히고 있다.
우측 상단에는 ‘조선 의정 대신 경연강관내각학사 기계유언호 자사경 오십팔세상(朝鮮議政大臣 經筵講官內閣學士 杞溪兪彦鎬 字士京 五十八歲像)’이라고 해 유언호의 58세(1787년 정조11)때 초상화임을 밝히고 있다.
또 우측 하단에 ‘용체장활시원신감일반(容體長闊視元身減一半)’이라고 해 인물의 크기를 1/2로 줄였다는 등 초상화를 그린 원칙에 대해 간략히 덧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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