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운 충남본부 부국장

수년간 맥없는 경기를 펼치며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는 저급 야구를 선보였던 탓에 한화이글스 팬들의 탈꼴찌를 향한 갈증은 극에 달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말 김성근 감독 영입설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의 영입을 놓고 찬반 여론이 팽팽하게 맞섰다.
 
‘아사(餓死) 직전의 상태에 빠져있는 한화를 구할 유일한 인물은 김성근 감독’이라는 팬들이 있었는가 하면 ‘이제 한물 간 노장을 영입해 무슨 성적을 올리겠느냐’며 회의적 반응을 보이는 팬들도 많았다. 특히 ‘지나치게 선수들을 혹사시키는 철저한 관리형 야구를 지향하는 김성근 감독의 야구는 성적을 낼지는 모를지언정 즐기는 야구로서는 가치가 없다’는 혹평을 하는 팬들도 많았다.

우여곡절 끝에 ‘야신’이라는 김성근 감독이 한화에 부임했다. 선수는 물론 팬들을 지치게 만드는 김성근 감독의 야구는 이제 한국프로야구에서 종지부를 찍어야 할 구태(舊態)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나는 그의 부임이 달갑지 않았다. ‘이기는 데만 집착하는 파이팅 없는 야구로 회귀하는데 꼴찌만 벗어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회의적 생각을 가졌던 것이다. ‘설령 탈꼴찌를 하고 일정 정도의 성적을 올린다고 한들 그것은 진정 즐기는 야구가 아닌 그저 냉혹한 승부만 살아있는 야구’라고 생각했다. 본래 통제형 관리자를 달가워하지 않는 성격 탓에 김성근 감독에 대한 기대는 애초에 없었다. 기대를 갖지 않은 것은 그가 이기는 야구는 구사할지언정 즐기는 야구를 구사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다.

스프링캠프를 하는 동안 예상했던 대로 김성근 감독은 선수단을 초주검 상태까지 몰고 가는 혹독한 훈련량을 보였다. 고정 팬들은 물론 타 구단 팬이나 야구에 별 관심이 없는 이들까지 시선이 한화와 김성근 감독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정규시즌의 대장정이 시작되며 한화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승패를 떠나 정말 재미있는 야구를 구사했고, 가장 사랑받는 구단이 됐다. ‘김성근 야구는 재미없는 야구’라는 나의 선입견이 산산조각 났다. 한화는 가장 인기 있는 구단이 됐고, 가장 많은 TV중계가 송출되는 팀이 됐다. 한화의 한 경기 한 경기는 전 국민의 이야깃거리가 됐고 팬들은 열광했다. 절대 쉽게 포기하지 않는 근성있는 경기를 펼쳤고, 역전 드라마를 수시로 연출했다. 2015년 프로야구는 누가 뭐래도 한화이글스가 주인공이었다.

한화팬들은 참으로 신나는 야구시즌을 보냈다. 그러나 매 경기 모든 전력을 총 투입하는 패턴이 지속되며 선수들은 체력이 고갈되고 부상자가 속출하며 중후반 이후 독수리의 날개가 꺾였다. 결국 그토록 갈망하던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됐다. 팬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화팬들은 실망하는 모습에 앞서 진정으로 팀을 격려하고 성원하며 내년 시즌을 기대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줬다. 결과는 실망스러울지 몰라도 과정이 너무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매 경기 최선을 다하며 분투하는 한화선수들의 투지를 보며 팬들은 행복한 한해를 보냈다. 행복했으니 더 바랄 것이 없다는 것이다.

팬들이 우승을 원한 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팀과 더불어 행복이란 가치를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우승 자체를 염원했다기보다는 우승을 통한 행복을 기대했던 것이다. 우승은 수단적 가치이지만 행복은 궁극적 가치이다. 행복을 느끼고 싶기에 그 수단으로 우승, 또는 포스트시즌 진출 등의 목표 달성을 원했던 것이다. 올해 한화는 목표한 성적을 거두지 못했지만 팬들에게 행복이라는 큰 선물을 안겨주었다. 수단적 가치인 목표달성은 못했지만 궁극적 가치인 행복은 듬뿍 안겨주었다. 행복 이상의 가치는 없다. 어떠한 성공이나 만족도 행복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래서 행복을 얻으면 모든 것을 다 얻는 것이 된다. 한화팬들은 말한다. “2015년, 그래도 행복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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