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자랑인 진잠 ‘델라웨어’가 위기를 맞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농촌 고령화 등으로 델라웨어 재배를 포기하는 농가가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올해 들어선 20여 재배농가가 폐업을 신청하는 등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8일 진잠농협에 따르면 지난 19세기 미국 뉴저지주에서 우연실생(우연히 나타나는 변이종)으로 발견된 델라웨어는 알 크기가 1.4~1.8g으로 일반 포도보다 작지만 평균 당도가 17~18브릭스로 일반 포도인 캠벨얼리보다 3브릭스나 높게 나타나는 등 단맛이 훨씬 강해 상품성이 높다. 국내에선 진잠지역에서 최초로 재배됐고, 첫 수확이 이뤄진 1967년엔 대통령도 이 포도를 맛보기도 했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진잠 델라웨어는 그러나 그 명백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진잠지역에선 53개 농가가 델라웨어를 재배하고 있었지만 올해 20여 농가가 폐업을 선언했다. FTA 기류에 휩쓸려 미국과 칠레 등에서 델라웨어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수입돼 수익성이 크게 떨어졌다. 국내산 델라웨어(2㎏) 가격은 대형마트 기준 2만 원이 넘지만 수입산은 1만 원대 중반에 형성돼 있다. 일부 농가는 울며 겨자먹기로 수입산 형성가격(1만 5000원)에 맞춰 상품을 내놓으면서 적자 폭을 줄이려 안간힘을 쏟고 있다.

농가 고령화도 이 같은 진잠 델라웨어 위기의 요인으로 꼽힌다. 지역개발이 상대적으로 덜 된 탓에 젊은층 인구가 도심으로 빠져나가 농촌 고령화가 심화됐다. 수익도 안 나는데다 일손도 버거워지자 델라웨어 재배를 포기하는 농가가 늘고 있는 거다.

진잠에 남은 30여 농가도 이 같은 위기 속에서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이들의 재배 중단도 시간문제라는 말이 나온다. 수익성이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만큼 더 이상 델라웨어의 명맥을 이어가기가 버거울 수밖에 없을 것이란 얘기다. 일조량이 대전보다 좋은 경북 김천이 델라웨어 주산지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도 진잠의 입장에선 야속한 노릇이다. 김천지역 델라웨어는 진잠에 비해 약 보름 정도 빨리 수확이 가능하기 때문에 진잠의 경쟁력은 점점 약화되는 양상이다.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진잠농협 관계자는 “올해 폐업을 신청한 포도 농가들이 상당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이유”라며 “지역사회가 진잠 포도 재배 기반을 되살리기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라고 말했다.

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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