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부자 '사유담(史遊談)'> 아가멤논의 비극적 죽음

▲ 1876년 미케네에서 발견된 아가멤논의 황금마스크.

그리스는 비극을 교훈으로 삼는 나라였다. 해마다 경쟁에서 이긴 세 편의 비극이 연극으로 상영되었는데 그 연극은 사실 집체교육과 같은 개념이었다. 말하자면 반공교육 받듯 세뇌교육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쉽다.

종교를 가르치면서 천국을 보여주는 것보다 지옥을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이듯 비극을 보면서 그리스 사람들은 사회가 막장으로 치닫게 되면 큰 문제가 생긴다는 걸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의리와 겸손을 배워갔다. 이 때문에 저주 시리즈가 많은 것이니 그리스를 너무 잔인하다고 욕할 필요는 없다. 드라마가 새드엔딩으로 끝나면 말할 수 없이 기분 나쁘지만 여운은 오래 남는 것처럼 비극에는 묘한 매력과 교훈이 있다.

당최 이해할 수 없었던 인어공주의 ‘거품소멸’은 반은 생선인 인어공주를 더욱 애잔하게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전직 공주 이야기들이 모두 예쁘게 오래 행복했다는 기억과 함께 화려한 드레스가 조금 생각나는 반면, 걸친 의상으로는 가장 저렴했던 인어공주의 이야기는 물안개처럼 방울방울 가슴에 앉았다. 바로 비극의 힘이었을 것이다.

비극 중에 그나마도 들어봤던 비극은 아가멤논(Agamemnon)의 비극일 것이다. 브래드피트(Brad Pitt)가 나왔던 ‘트로이(Troy)’라는 영화에서는 아가멤논이 트로이 전쟁에서 브리세이스(Briseis)의 칼에 죽게 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는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금의환향하며 돌아와 아내의 손에 죽는다. 전쟁을 갓 마치고 온 거친 남성을 여자 혼자 죽였다는 게 믿기지 않겠지만 그녀 뒤에 아이기스토스(Aegisthus)가 있었다.

클리타임네스트라(Clytemnestra)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 온 남편을 왜 죽인 걸까? 대승을 거두고 어마어마한 승전 기념물과 트로이 본토를 가지고 와서 막대한 부귀영화를 누릴 안주인이 되는 상황인데 왕을 죽일 일이 무엇이었을까?

▲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화가 피에르 나르시스 게랭 (Pierre-Narcisse Guerin)이 그린 유화 '아가멤논의 살해'. 남편 살해를 주저하고 있는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아이기스토스가 부추기고 있다.(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이유는 많다. 일단 클리타임네스트라는 결혼 전, 사랑하는 정인 탄탈로스(Tantalus)와 혼인이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 아가멤논이 정인을 죽이고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결혼을 강요했다. 그래도 왕비로서 예우를 다했기에 겨우 삭혀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시동생 메넬라오스(Menelaus)가 세계 최고의 미인과 결혼했다고 자랑을 하더니만 트로이의 파리스(Paris) 왕자와 야반도주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겸사겸사 트로이를 치러간다 했다. 사실 헬레네를 훔쳐간 것보다 척박한 그리스의 눈에 트로이의 평야는 언제나 달콤한 꿀통이었다.

헬레네(Helene)를 핑계로 트로이로 넘어가기 위해 연합군을 모집했는데 그 연합군에는 아킬레우스(Achilles), 오디세우스(Odysseus), 파트로클로스(Patroclus), 현자 네스토르(Nestor) 등 대장군들이 포함돼있었다. 일단 최단거리로 트로이를 치기위해 에게 해(Aegean Sea) 북부의 바다에서 트로이 쪽으로 배를 몰았는데 번번이 역풍이 불어 배가 출발한 곳으로 밀려왔다. 하도 이상해서 신탁에 물으니 아가멤논이 밤 사냥에 나가 잡았던 하얀 사슴이 아르테미스(Artemis)의 것이라 배는 아르테미스의 화를 풀어주기 전엔 출발 할 수 없을 것이라 했다. 원인을 알았으니 아르테미스를 위한 강한 제물이 필요했다. 아가멤논은 큰딸 이피게네이아(Iphigenia)를 바닷가로 불러냈다. 그리고는 한달음에 사랑하는 아빠에게 달려온 첫딸을 바다에 던져 재물로 바쳤다. 이 소식을 들은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분노했다. 이 분노를 눈치 챘던 자가 아이기스토스였고 아이기스토스는 아가멤논에게 복수하기 위해 왕비에게 접근한다. 트로이 전쟁은 10년간 이어졌고 아이기스토스는 왕 역할에 가까운 섭정을 하게 됐다. 10년차에 개선가를 울리며 남편이 들이닥치자 바람피운 게 들키느니 남편을 죽이는 게 나았겠다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 아가멤논의 성격은 불같았고 난폭했다. 안 그래도 여러 가지로 미운 남편은 예언자였던 공주 카산드라(Cassandra)를 데려왔다. 언제나 그렇듯 공주는 젊고 예뻤다.

일단 레드카펫을 깔고 남편을 환대하고는 편히 쉬되 피의 대가를 닦아내야 하니 무기를 궁전으로 들이지 말고 신에게 정결의 미사를 드려야한다고 주장했다. 맞는 생각이라고 판단한 아가멤논은 무장을 해제 하고 카산드라와 철없이 목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탕 속에서 아이기스토스와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 물 저장고. 우물이 없어 빗물을 저장하여 쓴 것으로 보인다.

정말 미케네 성곽 꼭대기에 목욕탕처럼 움푹 파인 공간이 있다. 사이즈는 조그만 방만하다. 두 번째 갔을 때에는 비가 와서 물이 차 있었는데 그러고 나니 제법 목욕탕스러웠다. 그런데 배수구가 없다. 그럼 저 물은 누가 퍼내고 누가 채운 것일까?

노예가 했던 일과였을까? 궁금한 게 겨우 배수구다.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내가 참 집안 살림에 쩔어있는가보다.

글·사진=김기옥 님(협동조합 사유담(史遊談))

정리=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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