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의 대가 '스튜디오 지브리' ③

 “그렇게 생명은 이어져가는 거야.”

# 구하라, 마법이 사라져가는 세상을

1. 게드전기-어스시의 전설(2006)

서쪽 바다 끝에 살고 있던 용이 갑자기 인간 세계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곳곳에서 작물이 죽어가고 가옥이 쓰러져 가고, 마법사들이 마법을 잃어버리는 기이한 일이 연이어 발생하기 시작한다. 한편 편안한 왕자의 신분과 나라를 버리고 여행을 하던 아렌 왕자는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악의 근원을 찾아 여행 중이던 대현자 하이타카(게드)와 우연히 만나게 되고 이들은 함께 모험을 떠나게 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장남 미야자키 고로의 감독 데뷔작으로 어슐러 르 귄의 소설 ‘어스시의 마법사’ 중 세 번째 작품 ‘머나먼 바닷가’와 네 번째 작품 ‘테하누’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지브리 박물관장을 지낸 것 외에는 제작경력이 전무했던 미야자키 고로가 연출을 맡아 화제가 됐다. 결국 낙하산 임명에 대한 불만과 신입감독에 대한 불신으로 시작된 작품은 상업성 면에서는 나름 선전했지만 평단과 관객의 반응은 바닥을 달렸다. 2006년 최악의 영화로 평가받으며 일본 평론가들의 혹평이 이어졌다.

여기에 제63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특별초대작품으로 상영된 후 외신들은 전작의 명성에 못 미치는 작품으로 평가했고 원작자 르 귄 역시 “이것은 내 책이 아니라 고로의 영화다”라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전 물고기인 포뇨도, 인어인 포뇨도, 사람이 포뇨도 다 좋아요!

“걱정마, 내가 지켜줄게”

2. 벼랑 위의 포뇨(2008)

호기심 많은 물고기 소녀 포뇨는 따분한 바다 생활에 싫증을 느끼고, 급기야 아빠 몰래 늘 동경하던 육지로 가출을 감행한다. 해파리를 타고 육지로 올라온 포뇨는 그물에 휩쓸려 유리병 속에 갇히는 위기에 처하게 되고 때마침 해변가에 놀러 나온 소년 소스케의 도움으로 구출된다. 소스케와의 즐거운 육지 생활도 잠시, 바다의 주인이 된 아빠 후지모토에 의해 결국 포뇨는 바다로 다시 돌아간다. 하지만 동생들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한 포뇨는 소녀의 모습으로 변해 거대한 파도와 함께 소스케에게로 향하는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각본, 감독, 원작까지 모두 맡은 작품으로 스토리는 인어공주를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각색이 아니라 인간이 되고 싶은 인어 등 일부만 차용했다.

CG를 사용하지 않고 색연필을 이용해 손으로 그려진 그림들로만 구성해 동화적이면서 따뜻한 느낌을 주고 있다.

‘벼랑위 의 포뇨’ 한글판 포스터의 로고체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오직 한국팬에게만 선물한 것으로 한국 관계자에게 한글 제목의 메모를 받아 직접 하나하나 보면서 정성으로 그린(?) 것이라고 한다.

 

  다들 열심히 살아가는 걸 너희가 모르는 것 뿐이야

# 키 10cm ‘小人 가족’의 오밀조밀한 일상

3. 마루 밑 아리에티(2010)

교외에 위치한 오래된 저택의 마루 밑에는 인간들의 물건을 몰래 빌려 쓰며 살아가는 소인들이 살고 있다. 그들 세계의 철칙은 인간에게 정체를 들키면 그 집을 당장 떠나야 한다는 것. 14살이 된 10cm 소녀 아리에티는 부모님의 도움 없이 홀로 마루 위 인간 세상으로 뛰어든다

영국의 동화작가 메리 노튼의 판타지 소설 ‘더 바로워스(The Borrowers)’를 원작으로 요네바야시 히로마사가 연출을 맡았다. 기획과 각본은 당연히 미야자키 하야오.

요네바야시 감독은 이 작품으로 준수한 연출력을 선보였고 흥행도 그럭저럭 성공했기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후계자’가 될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인간의 물건을 빌려쓰는 소인답게 아리에티의 머리집게는 빨래집게이고 칼은 시침핀과 같은 물건으로 표현되는 등 인간의 물건을 어떻게 빌리는지에 대한 묘사가 흥미롭게 진행된다.

‘마루 밑 아리에티’는 소인족과 인간은 살아가는 방식은 다르지만 살아가고 있다는 공통적인 소재를 통해 삶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살아있다는건 누구에게나 미래가 있다는 것. 뒤돌아보면 바로 거기에 미래가 있단다.

# 수채화 같은, 첫사랑의 설렘

4. 코쿠리코 언덕에서(2011)

배경은 1964년 도쿄 올림픽을 한 해 앞둔 1963년의 도쿄 부근 어느 소도시.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코쿠리코 하숙집을 운영하는 열여섯 소녀 우미는 바다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매일 아침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는 깃발을 올린다. 그 깃발을 매일 바다 위에서 바라보는 열일곱 소년 슌. 한편, 낡은 것을 모두 부수고 새로운 것으로 바꾸자는 사회적인 움직임과 함께 우미의 고등학교에서도 오래된 동아리 건물 ‘카르티에 라탱’의 철거를 두고 갈등이 일어난다. 우미와 슌은 낡았지만 역사와 추억이 깃든 건물을 지키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보존운동을 시작하고, 두 사람은 이를 계기로 서로에게 서서히 끌리기 시작하는데….

이 영화는 소재나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림과 색감, 작업방식까지 모두 ‘낡은 것’을 추구했다.

1964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새것에 대한 구호가 난무하는 가운데, 낡은 학생회관 건물을 철거하려는 학교 측에 맞서 건물을 지키려는 학생들의 노력은 낡고 오래된 것의 가치와 그런 것들에 대한 지브리의 애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특히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인물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점이 인상적이다. ‘좋아한다’는 말도, 사랑 때문에 눈물 흘리는 장면도 단 한 번밖에 나와지 않지만, 소년과 소녀의 작은 몸짓이나 호흡은 긴장과 설렘, 망설임, 아픔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미야자키 고로가 연출을 맡은 두 번째 작품이지만 아버지 미야자키 하야오가 기획과 시나리오 등을 총지휘했다. 장남의 첫 애니메이션 ‘게드전기’ 시사회에서 작품에 실망해 상영 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갔던 아버지는 이번 시사회에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 땅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 생기가 넘쳐. 새, 벌레, 짐승, 풀, 나무, 꽃, 사람의 정이...

# 달빛과 함께 온 지브리의 공주

5. 가구야 공주이야기(2013)

깊은 산속 마을의 할아버지는 우연히 빛나는 대나무 속에서 여자 아이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온다. 손에 올라갈 정도의 크기에서 금세 아기로, 그리고 또 반나절 만에 아름다운 소녀로 성장하는 신비로운 아이. 가구야라고 이름 지어진 그녀의 미모는 널리 소문이 퍼져, 장안의 내로라 하는 귀공자 5명이 청혼을 해오고, 급기야 황제까지 가구야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가구야는 산속 마을에서의 첫사랑 스테마루를 잊지 못하고 그를 찾아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비밀을 털어놓는데….

일본 전래동화 ‘다케토리 모노가타리’를 원작으로 ‘빨강머리 앤’, ‘추억은 방울방울’의 다카하타 이사오가 연출을 맡았다. 작품 전체가 수채화풍의 스타일로 이전의 지브리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른 일본의 전통적인 느낌이 난다.

눈에 띄게 박진감이 넘치는 액션신도 없고 웅장한 장면 하나 없는 아기자기한 면으로 인해 어린아이들이 보다가 중간에 재미없다며 칭얼댔다고도 한다. 그 때문이지 일본에서도 제작비 51억을 쏟아붓고도 수입은 23억으로 적자를 봤다.

 

  넌 내 소중한 비밀이야. 누구에게도 말 안 했고,앞으로도 안 할 거야

# 약속해줘. 우리 둘 이야기는 비밀이야, 영원히

6. 추억의 마니(2014)

마니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안나는 마니의 초대로 저택의 파티에 참가하지만 신기하게도 다음날 낮에 찾아간 저택은 아무도 살지 않은 폐가로 변해있는 등 알 수 없는 일들이 자꾸 일어난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마니는 사라지고 낡은 저택에 새롭게 이사온 소녀 사야카와 안나는 우연히 마니의 일기장을 발견한다. 그리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그 안의 이야기에 놀라게 되는데….

영국의 아동문학가 조안 G. 로빈슨의 ‘거기 마니가 있었다 When Marnie Was There’가 원작으로 ‘마루 밑 아리에티’를 연출했던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감독의 작품. 다만 무대는 영국에서 일본 훗카이도로 옮겨왔다.

누구나 겪었을 유년의 성장통, 사연 있는 소녀들의 우정 이야기가 지브리 특유의 감성적 화면과 음악에 담겨 아릿아릿 가슴을 파고든다.

2014년 스튜디오 지브리의 해체(정확하게는 ‘스튜디오는 유지하되 제작 부문은 해산’)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 선언으로 인해 지브리의 (잠정적으로) 마지막 작품으로 관심이 몰린 것은 당연지사. 일본 내에서는 ‘섬세하고 은은한 판타지, 지브리 스타일과는 색다른 감동’, ‘귀를 기울이면 이후 非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이라는 평이 있는가 하면 ‘부자연스러운 원작 재구성의 실패’, ‘기존의 지브리식이라고 할 수 없는 난해한 내용’이라는 평도 적지 않아 호불호가 극명히 갈렸다.

결국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감독의 전작인 ‘마루 밑 아리에티’가 거둔 92억엔의 흥행수입은커녕 ‘귀를 기울이면’의 40억엔에도 못 미치는 35억엔의 흥행수입을 모으고 막을 내렸다.

지브리 작품 중 처음으로 두 명의 여자 주인공을 기용했다. 예고편에서 안나가 상당히 남자처럼 나오는지라 착각한 사람도 꽤 있었다.

<사진=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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