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고등학교 하우정

“사랑도 트위터처럼 3단계가 있습니다. 
팔로우(친구 맺기), 언팔로우(친구 끊기), 블록(차단).” 
- <마법의 순간>, 파울로 코엘료

인간관계에서 오는 상처에도 3가지 유형이 있다는 흥미로운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팔로우(친구 맺기)할 때의 상처, 언팔(거절)당했을 때의 상처, 급기야 차단당하거나 차단해야 하는 인간관계가 생겼을 때의 상처. 이러고 보니 우리는 마치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상처의 굴레 속에서 매일 매일을 사는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동시에 우리에게는 타인으로부터 받은 상처에 대처하는 여러 가지의 방식들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부딪혀 타인과 사회를 바꿔나가거나 나 자체를 바꿀 수도 있고, 상처를 홀로 참고 감내할 수도 있습니다. 

친구, 부모님, 선생님, 직장 상사와의 관계에 있어서, 특히 그 심리적 거리가 먼 관계일수록, 사실 ‘감내하기’만큼 편하고도 효과적인 방법이 없습니다. 고장난명(孤掌難鳴,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이라는 말처럼 한 쪽에서 아애 신경 쓰지 않으면 당장 문제될 것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서로 참고 감내하면서 형성된 관계를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인간관계’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지인’이나 ‘인맥’은 될 수 있을지언정, ‘내 사람’ 혹은 ‘내 편’이라고는 부를 수는 없는 거품과 같은 관계에 그치지는 않을까요?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필자는 상처를 무작정 감내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단기적 인간관계에는 도움이 될지언정 결론적으로는 알맹이 없는 인간관계만을 형성할 것이라 주장하는 바입니다. 

우선, 상대방이 주는 시시콜콜한 상처까지 모두 마음속에 쌓게 되면 머지않아 내 내면이 망가질 수 있습니다. 물론, 친구나 동료의 진심어린 조언과 선생님과 직장상사의 가치 있는 충고는 받아들여 몇 번이고라도 되새길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주위에서 나를 향해 들려오는 가시 박힌 말들 중 상당수는 와전되었거나 나에 대한 불충분한 정보 속에서 섣부른 판단을 통해 형성된 것들입니다. 이와 같이 단순히 상처 주기위한 상처에까지 참고 견딜 필요가 없습니다. 정정하거나 완벽히 무시하는 편이 낳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타인에게 받은 상처에 대해서 무조건적으로 감내하기 전, ‘걸러내기’라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옳은 지적에 대해서는 받아들여 깊게 되짚어보고, 옳지 않은 비난에 대해서는 과감히 눈을 닫아 닫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무조건적으로 상처를 감내해 내 내면이 망가지면 그 이후론 그 어떤 인간관계도 형성되기 어렵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무작정 상처를 감내하다보면 내가 꿈꿔왔던 미래에 대한 방향성을 잃고 방황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는 상대의 말을 모두 내 안에 담아두려고 할 때, 내가 원하던 길을 꿋꿋이 가는 뚝심과 자신감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게 되듯이 상대방의 말들을 필터링 없이 받아들이면 이리저리 휩쓸려 목표지점까지 절대 갈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즉, 무심코 던진 한마디로 인해 나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사라지지 않도록 생각 없이 던진 상처 주는 말은 과감히 반사시키는 배짱이 필요할 것입니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죽음의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는 대부분을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가족생활, 학교생활, 직장생활 모두 혼자 하는 일이 아니기에 인간관계는 늘 우리의 고민입니다. 이처럼 우리 모두의 일생일대 난제인 ‘인간관계’에 있어 필자는 단 한가지의 방법을 추천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바로 역지사지의 지혜, 다른 말로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타인에게 받은 무의미한 상처에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면, 이제 우리는 말하기 전에 생각하고 행동하기 전에 생각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생각하지 않고 말하는 것은 마치 조준하지 않고 쏘는 총과 같다고 합니다. 순간의 감정 표현도 필요하겠지만 상황과 상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고민한 후 조언해 타인에게 마음의 병을 주지 않는 사회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하나고등학교 하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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