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호익 교수

학습장애의 가장 큰 줄기 3가지는 읽기장애, 산술장애, 주의력장애이다. 학습이 부진한 학생의 약 80%는 읽기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학교 입학 후 학습능력의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요즘은 학교에서 경쟁을 부추긴다는 명목 때문에 시험을 점점 줄여가는 추세이긴 하지만 학생들의 학업성취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공부한 내용을 더 깊숙하게 뇌리에 새기도록 하는 방법 중 시험만한 것이 없다. 평가를 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줄을 세우는 것이 아이들을 힘들게 할 뿐이다.

읽고 이해하는 속도가 느리다면 읽기에서만 낙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거의 전 과목에서 좋지 않은 점수를 받게 된다. 시험은 수행평가를 제외하고는 모두 일정 시간 내에 읽고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읽고 이해하는 속도가 또래보다 느린 학생들 중에는 읽기 환경이 좋지 않아서 충분하게 읽기를 발달시키지 못한 학생들도 있지만 지능이 정상이고 개인적으로도 충분히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읽기가 부진한 학생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타고난 언어회로가 보통 학생들보다 취약한 학생들로 이런 증상을 난독증(Dyslexia)이라고 부른다.

◆ 난독증은 ‘해독’부터 어렵다

읽기는 ‘해독’과 ‘이해’의 2가지 과정을 거친다. 여기서 ‘해독’이란 문자를 음성언어로 바꿔주는 것을 말한다. 우리 뇌의 언어체계는 음성체계로만 진입이 가능한 구조로 문자는 뇌의 입장에선 그냥 일종의 기호나 그림일 뿐 언어가 아니다. 이 문자를 음성으로 바꿔 줄 때, 즉 ‘해독’이 될 때 뇌는 문자를 언어로 인식하게 된다. 그런데 영어는 한글과 달리 이 문자와 음성의 1:1 대응관계가 매우 복잡하다. 예를 들어 ‘a’는 어떤 때는 ‘/a/’로 발음이 되다가도 어떤 때는 ‘/æ/’가 되고, 어떤 때는 ‘/?/’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해독’의 과정에서부터 어려움에 처할 확률이 높고, 문자를 배우는 초기에 이 문제가 드러나게 되므로 영어권에서는 일찍부터 이 이상한 증상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글은 세종대왕이 창제할 당시 음성을 어떤 문자로 표현할까 충분히 연구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이 음성과 문자의 대응관계가 아주 체계적이고 투명하다. 그래서 창제 당시 이 한글은 누구나 반나절이면 익힐 수 있다고 자신하셨던 것이고, 실제로 한글에서는 아주 중증의 난독증이 아닌 한 한글을 배우는 초기에 약간의 어려움은 있을지언정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한글을 익히게 된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난독증에 대한 문제인식이 부족했고, 당연히 연구된 자료도 많지 않으며, 또 연구되었다고 하는 자료들도 대부분 영어권 자료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우리나라의 실정에는 맞지 않는다. 10여 년 전만 해도 난독증에 대해서 특강을 하면 학교에서는 우리 학교에는 난독증이 한 명도 없다는 답변을 들었었다.

◆음운성 난독증과 유창성 난독증

난독증은 초기부터 문자 습득에 어려움이 있는 ‘음운성 난독증’과 문자를 습득했으나 또래만큼 유창하게 읽지 못하는 ‘유창성 난독증’으로 나뉜다. 우리나라는 ‘음운성’보다는 ‘유창성 난독증’이 많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예측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음운성 난독증’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 또는 가정에서 가장 어려워하는 형태가 ‘음운성 난독증’으로 학생이 이런 난독증을 보이면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반대로 ‘유창성 난독증’은 관심을 가지기 어렵다. 왜냐하면 일단 읽을 수 있기 때문에 교사나 부모가 아동이 게으르고 의지가 약해서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만 생각하게 된다. 한글의 우수성(?)에 의해 난독증이 가려져 버리고 결국 이들은 고학년이 되어 충분히 실패할 때까지 시간만 끌게 된다.

◆난독증 뿌리를 제거해야

난독증은 좌뇌 언어회로의 신경생물학적인 취약성(청각정보처리능력)으로 나타나는 증상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읽기지도, 문해교육, 언어치료, 심리상담만으로는 쉽게 개선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읽기를 싫어하게 만들어 악화시키기도 한다.

지금까지 난독증이란 이름만 붙이지 않았지 읽기부진 학생들에게 그 방법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난독증으로 어려움을 겪는 아동들이 존재하는 것은 그것만으로 해결이 안된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음운성’이든 ‘유창성’이든 간에 신경학적 개선 방법이 같이 접목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여전히 일선 현장에서는 좀 더 자세하게 원리를 가르치고, 동기를 부여하고, 읽기지도를 하면 될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난독증 분야에서 10년 넘게 지도해오고, 대학에서 난독증 강의를 하고 있는 필자의 경험으로는 그 방식은 오히려 더 난독증을 깊숙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혀 개선하기 어렵게 만드는 일이라고 본다.

농사일을 해본 사람은 안다. 잡초의 몸통만 뜯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잡초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잡초를 말끔히 제거하려면 몸통이 보일 때 뿌리까지 뽑아야 한다.

글= 이호익 leehoik@tomatis.co.kr

-원광디지털대학교 언어치료학과 난독증 외래교수

-난독증지원센터장

-난독증 전문가 양성과정 강사

정리=정재인 jji@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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