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생활에 널리 퍼져있는 경제용어가 있다. 남의 돈을 빌려다 투자해 이익을 내는 ‘레버리지’(Leverage)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타인 자본을 지렛대 삼아 더 큰 수익률을 올리고 싶어 하는 심리가 깔려있다. 과거 ‘부동산 불패신화’를 떠받친 것도 땅값이 오를 것이란 기대 아래 무리하게 빚을 내 땅을 사들이고 되팔아 차익을 노린 레버리지 투자였다. 돈 놓고 돈 먹는 일종의 도박이다.

정치영역에도 레버리지는 작동한다. 충남 지역사회를 극심한 분열로 몰아넣은 ‘충남도민 인권보호·증진에 관한 조례 폐지조례안’ 얘기다. 인권조례 폐지안은 지난 30일 충남도의회 소관 상임위원회인 행정자치위원회를 무사(?) 통과했다. 폐지조례안 발의는 자유한국당 소속 도의원들이 주도했다. 전체 도의원 40명 중 26명이 한국당이고 23명이 공동발의했다.

인권조례가 도민 인권을 증진하기보다 역차별과 부작용 우려를 낳고 ‘갈등관계’가 지속되고 있다는 게 폐지 명분이지만 도의원들의 속내에는 6월 지방선거가 똬리를 틀고 있다. 이들이 지적하는 갈등관계는 지난해 11월 충남기독교총연합회가 7만 7785명의 주민 연서(連署)를 받아 충남도에 제기한 인권조례 폐지청구를 말한다. 인권조례에 동성애 옹호·조장이라는 낙인을 찍은 기독교단체의 전방위적 활동은 도내 15개 시·군에 지역구를 둔 도의원들을 자극했고 6개월여 남은 선거의 정치적 제물로 올라왔다. 가만둬도 도가 조례 제정·개폐청구제도 절차를 밟아야 하는 마당에 의원발의로 인권조례 폐지에 나선 한국당 도의원들의 정치행위는 재선 또는 3선이라는 미래 수익을 정치적으로 계산한 고도의 ‘레버리지 정치’로 읽는 게 합당하다.

또 하나의 지렛대는 안희정 지사다. 안 지사는 2010년 지방선거부터 재선에 성공해 8년째 도정을 이끌고 있고 인권조례는 2012년 5월 한국당 송덕빈 의원 발의로 제정됐다. 안 지사 체제에서 인권조례에 근거를 둔 인권센터와 인권위원회가 만들어졌고 국적, 인종, 성, 연령, 장애, 경제적 사회적 지위 등에 의한 어떤 차별도 단호히 거부한다는 ‘충남도민 인권선언’이 선포됐다. 인권조례 폐지는 안 지사의 상징인 인권도정을 손쉽게 무너뜨리는 것이면서 안 지사와 대척점에 있는 이들과 연대할 수 있는 좋은 시그널로 작용한다. 210만 도민을 위한다던 인권조례가 낡은 정치공학의 희생양으로 전락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레버리지 효과는 반드시 수익을 전제로 한다. 불확실한 경제상황에서 장밋빛 전망만으로 모험을 하면 손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쪽박 차기 십상이다. 한국당 도의원들에게 아직 출구는 있다. 인권조례 폐지조례안이 본회의에 상정됐을 때 당론이 아니라 자기 신념에 따라 투표하면 된다. 210만 도민의 인권은 애초부터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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