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충격이고 실망스럽고 부끄러운 날이었다. 양반고을로 자부하며 살아가는 충남도민을 비롯한 충청민들이 이번 안희정 사태를 보며 느끼는 감정일 게다. 이렇게 뻔뻔스럽고 파렴치한 이에게 8년에 가깝게 충남도정을 맡기고 충청대망론까지 기대를 걸었던 사실에 대해 허탈감을 넘어 배신감마저 들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아직 여비서의 일방적인 폭로가 사실로 완전하게 입증된 것은 아니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다고 하니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여비서가 방송에서 한 증언에 따르면 안 전 지사의 행위는 그야말로 파렴치하다 아니 할 수 없다.

여비서는 방송에서 지난해 7월과 9월 스위스, 러시아 출장 당시부터 최근 8개월 동안 모두 4차례 당시 안 지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고 수시로 성추행이 이뤄졌다고 폭로했다. 여비서는 심지어 한창 ‘미투(Me too)' 운동이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던 지난달 25일에도 안 지사가 미투를 언급하며 사과한 상태에서 또 다시 성폭행은 계속됐다고 밝혔다.

여비서의 증언을 보면 안 전 지사가 그러고도 여비서와 텔레그램 메신저 비밀대화 등을 통해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사건을 사전에 무마하려 한 정황들이 드러난다. 여비서는 “늘 지사님이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저한테 ‘미안하다. 괘념치 말아라. 내가 부족했다. 다 잊어라’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고 털어놨다.

안 전 지사는 자신의 이런 행위를 뒤로 하고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미투 운동을 옹호하며 인권을 중시하는 정치인의 이미지를 심어왔다. 여비서가 폭로한 날 오전에도 행사에 참석해 “ 최근 확산되고 있는 미투 운동은 남성 중심적 성차별의 문화를 극복하는 과정”이라며 “미투 운동을 통해 인권 실현이라는 민주주의 마지막 과제에 모두 동참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가면을 쓴 안 전지사의 행동에 충청민은 물론 전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안 전 지사는 파문이 확산되자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여비서에게 사과하고 어리석은 행동에 용서를 구했다. 그리고 도지사직을 내려놓고 일체의 정치활동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안 전 지사는 이것으로 이 사태가 마무리될 것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만큼 수사결과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그에 앞서 자진해 충남도민들을 비롯한 국민들에게 사실관계를 설명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것만이 그동안 성원해준 국민들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된다.

이제 가면을 벗고 솔직한 자세로 나와야 한다. 페이스북이 아닌 실제의 목소리로 사과해야 한다. 적어도 두 번에 걸쳐 도백을 만들어준 충남도민에게는 더 고개를 숙이고 석고대죄하는 것만이 양반도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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