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대 명예교수

육가(六歌)는 6수를 단위로 한 연시조다. ‘풍계육가(楓溪六歌)’는 ‘장육당육가(藏六堂六歌)’를 지은 이별의 조카 이정(1520~1594)의 작품이다.
육가는 한시 계열의 노래와 우리말의 노래인 연시조로 나눌 수 있다. 또한 연시조 육가는 이별의 ‘장육당육가’ 계열과 이황의 ‘도산육곡’ 계열 등으로 나눠진다. 이별의 육가 계통은 주로 그 후손 이정·이득윤·이홍유 등으로 이어졌고, 이황의 육가 계통은 장경세·안서우·건구 등으로 이어졌다.
이 ‘풍계육가’는 확실한 창작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이황의 ‘도산십이곡’과 비슷한 시기에 지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육곡 전편이 고결한 선비의 삶을 노래하고 있다.
청풍을 좋이 여겨 창을 아니 닫았노라
명월을 좋이 여겨 잠을 아니 들었노라
옛사람 이 두 가지 두고 어디 혼자 갔노
첫 수는 청풍이 좋아서 창을 닫지 않고 명월이 좋아서 잠을 자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옛 사람들은 이 두 가지를 두고 어디 혼자 가셨다는 말인가, 청풍과 명월은 자연이며 창은 자연과 나와의 소통 통로다. 자신은 청풍명월을 들여놓으려고 옛 사람처럼 자연을 계속 즐기겠다며 창을 아니 닫고 잠도 아니 잔다고 노래한다.
이 육가 계통의 연시조는 비판·풍자적인 것이 일반적이나 ‘풍계육가’는 이에서 조금 멀어져 있다.
‘청풍명월’은 이백의 시 ‘양양가(襄陽歌)’에 나오는 시구다.
淸風明月不用一錢買(청풍명월불용일전매)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은 한 푼도 돈 들이지 않고 살 수 있다.
이러한 청풍명월은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결백과 온건한 성격을 평하여 이르기도 하고 풍자와 해학으로 세상사를 논하는 그런 뜻으로도 쓰인다. 둘째 수 초장에 ‘내라서 누구라 하여 작록(爵祿)을 맘에 둘꼬’라는 말이 있어 이 시조에는 세상이 맑지 못하고 밝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은 청풍명월을 좋아한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내라서 누구라 하여 작록(爵祿)을 맘에 둘꼬
조그만 띳집을 시내 위에 이룬바
어젯밤 손수 닫은 문을 늦도록 닫치었소
둘째 수다. 청풍명월이 좋아 조그만 띳집을 시내 위에 지어놓고 어젯밤에는 문을 늦게 닫았다는 것이다. 작록은 맘에도 없다는 것이다. 지은이의 처세가 어떠해야하며 어떤 생활을 해야 하는지 당시의 상황이 짐작이 가는 것이다.
이정은 무오사화, 갑자사화로 인해 죽은 이원의 조카이기도 하다. 이정의 할머니가 박팽년의 딸이다. 이원은 김종직의 문하로 무오사화 이후 김종직의 신원 운동을 벌이다 귀양을 가자 세상을 버리고 황해도 평산에 은거하며 집을 ‘장육당’이라 칭하고, 거기에서 ‘장육당육가’를 지었다. 이 육가의 계보를 이은 작품이 바로 조카 이정의 안빈과 낙도의 노래 ‘풍계육가’다. 세상에 나아가 화를 당하지 말고 산수 간에 군자로 산수를 즐기며 살라는 그런 메시지를 담고 있다.
육가는 이별의 ‘장육당육가’에서 연시조로 자리를 잡았다. 이후 연시조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으면서 18세기까지 지속적으로 창작되고 향유됐으며 시조사에서 우수한 많은 작품들을 남겨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