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봉 시인, 전 대전문인협회장

 
문희봉 시인

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 곁에는 사람들이 언제나 머무르기를 좋아한다.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자신에게 도움을 줄까를 기대하며 기다린다. 지나치게 주관이 강하고 마음이 굳어있고 닫혀 있는 사람 곁에는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 가까이 해봐야 얻어지는 것은 없고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열린 마음으로 사람을 대한다면 그 사람 가까이 있고 싶어지는 건 당연지사다. 다른 이의 말을 잘 들어주고, 마음을 받아 주는 것은 그 사람이 낮아지고 겸손한 사람일 것이기에 그럴 것이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제 욕망의 그림자를 불에 넣어 태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갈대도 자신이 흔들리는 것을 바람도 달빛도 아닌 제 몸속에서부터 표출돼 내뿜어지는 조용한 울음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후로는 더 의젓해지지 않았던가. 그걸 일러 달관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무엇인가를 애써 주려고 하지 않아도 열린 마음으로 남의 말을 경청하려 드는 사람 곁에는 늘 사람들이 머문다. 그런 사람이 손을 내밀면 별들이 손바닥 가득 떨어져서 꼬물거린다. 사랑은 언제나 밀려가고 오는 밀물과 썰물 위에서 흔들리는 조각배와 같이 어느 정도는 불완전한 것이기에 물 주고, 풀 뽑고, 거름 주면서 가꿔야 잘 자라는 생명체가 아닌가 생각한다.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춰 저 평지와 같은 마음이 되면 거기엔 더 이상 울타리도 벽도 필요 없어진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연일 사건·사고 소식이 넘쳐나지만 세상엔 아직 따뜻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 그렇기에 세상은 삐걱거리지 않고 잘 굴러가는 것이다. 내 욕심이 참 많은 그릇을 채울 것 같았는데 결국은 비워져야 할 것들이란 걸 깨닫는 순간 허탈감을 느낀다.

봄이 되면 넓디 넓은 들판엔 수많은 들꽃들이 각기 색깔이 다르지만 어울려서 잘 살아가듯이 그렇게 열려 있는 마음은 편안하게 살아갈 수가 있도록 해주는 신기한 물건이다. 이 세상에 누군가 사랑할 사람이 있고,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삶의 엄청난 활력소가 된다. 뛸 듯이 기쁘고 마음이 새털처럼 가벼워지고 솜털처럼 부드러워진다. 구절초꽃, 새하얀 구절초꽃이 물결보다 잔잔하게 피어 달빛들을 불러모은다.

들꽃들은 모양과 향기가 달라도 서로 시기하지 않고, 싸우려 하지 않으며, 아무런 갈등 없이 잘 살아간다. 사람이 보기에 좀 흉하고 향기가 없는 꽃이라도 옆의 꽃을 부러워하지 않고 어울리며 살아간다. 꽃은 다 예쁜 것이지 미추(美醜)가 어디 있는가?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 낸 억지 주관이다. 그것처럼 열린 마음은 자유로운 마음이다. 떨어지는 꽃잎은 봄바람이 잘 모셔 간다. 열린 마음은 강한 마음이다. 사람의 가슴속에는 사랑의 포자들이 풀풀 날아다닌다.

그러다가 우연히 마주친 어떤 매력에 의해 짜릿한 감동을 느끼는 순간, 포자 하나가 마치 물기 머금은 씨앗처럼 몸을 열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사랑은 이뤄진다. 어떤 이성에게 자기 몸을 내준다는 것은 다이아몬드보다 더 귀중한 것을 선물하는 것이다. 미추에 관계없이 향기로운 꽃에게는 벌과 나비가 항상 대기 중이다. 밭에는 봄보리들이 파랗게 자란다.

나를 낮추고 마음을 열어 두면 좋다. 진정 강해지려면,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인이 되려면, 마음을 열고 끝없이 자신을 낮추면 좋다. 그런 노력은 하지 아니하고 상대가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사람을 보면 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과일나무의 과일이 만추(晩秋)까지 분신들을 지켜 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날을 참고 견뎌내는가. 아직 어린 감일 때는 새나 사람이 먹으려 해봤자 떫고 비려 먹을 수 없게 만들어서 열매를 지키고, 도토리나 호두는 과육이 딱딱해 부리가 잘 들어가지 못하게 해 열매를 지키며, 밤은 가시로 알을 싸서 보호하면서 지킨다.

저 광활한 들판이 어떤 것과도 자리다툼을 하지 않듯이 열린 마음에는 일체의 시비가 끼어들지 않는 법이다. 밤새 퍼내도 마르지 않는 우물을 가진 그런 사람이라면 더 무엇이 필요할까?

오늘은 오래간만에 기특하기만 한 나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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