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우
(사)뿌리문화 이사장

담양전씨(潭陽田氏)의 시조 전득시(田得時:시호 충원 忠元)는 담양에 토착 세거해온 고을 향리(鄕吏)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서기 1155년(고려 의종9) 현량(賢良: 학문과 인품이 뛰어난 사람을 추천하는 제도)으로 천거돼 갑과에 장원급제하고 여러 벼슬을 거쳐 참지정사(參知政事:종2품 재신)에 이르렀으며 좌복야(左僕射: 중서문하성의 정2품 부총리) 등을 지낸 후 담양군(潭陽君)에 봉해졌다.

후손들은 담양군(潭陽君)에 봉해진 전득시(田得時)를 시조로 받들고 본관을 담양(潭陽)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 6세까지 독자로 내려오다가, 7세손 전희경(田希慶)의 아들 3형제대에서 큰아들 전녹생(田祿生)은 야은공파(惹隱公派), 둘째아들 전귀생(田貴生)은 뇌은공파(牢隱公派), 셋째아들 전조생(田祖生)은 경은공파(耕隱公派)로 나뉘었다.

큰 아들 전녹생(田祿生)은 고려 말의 명현(名賢)으로 공민왕 때 정당문학(政堂文學:중서문하성의 종2품 재신)을 거쳐 문하평리(門下評理: 종2품 재신으로 문하부의 참지정사를 고친 이름)에 이르렀으며 문신(文臣)이면서도 무예에 뛰어나 문무전재(文武全材)란 칭호을 받았다.

고려말에 삼사 좌윤(三司左尹:삼사의 종3품)과 밀직제학(密直提學: 정령의 출납과 숙위와 군기에 관한 일을 맡은 정3품)을 역임한 그의 아우 전귀생(田貴生)과 참지정사(參知政事:종2품)를 역임한 전조생(田祖生)은 모두 문장에 뛰어나고 학문이 깊어 3형제가 가문을 중흥시켰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전귀생은 불사이군(不事二君: 한사람이 두 임금을 섬기지 아니함)의 충절로 두문동(杜門洞: 개풍군 광덕산 마을)에 들어갔으며 수차에 걸쳐 벼슬할 것을 권유받자 절해고도(絶海孤島: 외딴 섬)로 자취를 감추었고 전조생은 깊은 산속에 은거하여 절개를 지켜 두문동 72현록(杜門洞七十二賢錄)에 올랐다.

세상 사람들은 이들 3형제를 가리켜 삼은전선생(三隱田先生)이라 불렀으며, 지금도 전라남도 담양읍 향교앞에 삼은전선생유허비(三隱田先生遺墟碑)가 전해지고 있다.

<담양전씨 장판각>-논산시 내동에 있는 담양전씨 전녹생의 문집인 '야은일고' 목판을 보관하던 장판각
전씨 3은, 3형제가 살던 고향집은 전남 담양 향교 자리다. 큰형인 야은이 집터를 담양부에 제공해 향교를 짓게 해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마치 집을 절에 희사하듯 성리학에 집을 헌정한 것이다. 담양 향교 유림과 전씨(田氏) 후손들은 이를 기려 삼은선생유허비(三隱田先生遺墟碑)를 담양 향교 앞에 세웠다. 담양 전씨는 전씨 3은의 후손들인데 충청남도 홍성과 경상북도 울진에 많이 모여 살아 각기 구산사(龜山祠)와 경문사(景文祠)를 세워 해마다 음력 10월 1일에 3은 선생을 기리고 있다.

담양전씨(潭陽田氏)는 이들 3형제 후손에서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는데, 고려와 조선에서 문과 급제자 127명, 봉군(封君) 15명, 판서급 22명, 정승 3명 등이 나왔다.

현대에도 전병헌(민주당 국회의원, 정책위의장, 2012년19대 총선 공심위원), 전여옥(국회의원), 전낙원(전국스키협회장, 파라다이스 전 회장), 전용갑(홍성중고등학교 재단이사장 지냄), 전동선(충남대 교수), 전일순(전 논산시장), 전준기(전 당진군수, 전 부여종친회장), 전숙희(수필가, 한국펜클럽회장), 전노수(전 대한교육연합회장), 전운덕(천태종 전 총무원장) 등이 가문을 빛내고 있다.

담양전씨는 전남 담양을 중심으로 세거하다가 충남 공주, 청양, 홍성, 예산 지역 등지로 분파(分派)했다.

특히 야은파와 뇌은파의 후손들이 충남 공주시와 청양의 정산 일대에 세거하며 학식을 쌓고 문장가로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야은파의 전화(田和)는 공주 이인 지역에서 도승을 지냈는데 후에 그의 후손들이 공주에 정착세거하게 되었다. 논산의 담양전씨들도 공주에 세거하였던 후손들이 이후 세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논산으로 옮겨 터를 잡았다고 한다. 1920년에 간행되었던 ‘조선의 성(姓)’에서도 논산 은진면 내동리(현 논산시 내동)에 담양전씨들이 집성촌을 형성하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2012년 현재 논산시에 거주하는 담양전씨는 논산읍에 125가구, 강경읍 17가구, 연무읍 46가구, 은진면 26가구 등 총 283가구로 조사됐다.

논산시 내동에는 담양전씨 장판각에 14개의 목판이 보관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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