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운의 우문우답] 경기가 나쁜 게 아니라 소비패턴이 변한 것이다
  • 김도운
  • 승인 2019.07.10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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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호경기란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늘 불경기란다. 그것도 최악의 불경기란다. ‘외환위기 때보다 더한 불경기’라고 하는 말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많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대해 자신의 잘못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나라를 원망하고 대통령을 탓하고 정치판을 욕한다. 이런 상황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늘 그렇게 불경기인데 어쩌다 우리는 개인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이르렀고, 해외여행 수요가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으며, 거리에는 고급 외제차가 즐비한 걸까.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은 눈에 비치는 소비형태로 경기를 측정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뭔가 가시적으로 소비가 질펀하게 이루어져야 호경기라고 느낀다. 하지만 소비는 단순 경제 현상이 아니라 사회 및 문화현상이 반영된다. 소득에 따라 사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인식이 달라지고, 문화를 향유하는 방식도 확연히 달라진다. 1인당 소득이 1만 달러이면 그에 맞는 의식 수준을 갖고 소비도 그에 맞게 한다. 2만 달러 시대에는 2만 달러에 맞는 소비형태로 옮겨간다. 지금은 3만 달러 시대이니 3만 달러에 맞는 소비가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소비문화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

지금껏 우리 사회는 앞만 보고 달렸다. 근로지상주의와 조직우선주의 속에 살았다. 하루가 멀다하고 야근을 했고, 휴일과 휴가를 반납하며 출근해 조직을 위해 일하는 것을 최고의 선으로 여겼다. 이 시대의 회식문화는 다 같이 고기를 굽고 소주를 질펀하게 마시는 형태가 주류를 이루었다. 노래방 또는 유흥점 등으로 자리를 옮겨 몸이 망가지도록 맥주나 양주를 마시는 2차도 당연한 코스였다. 그러다보니 심야할증 택시를 이용하거나 대리운전을 이용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렇게 노는 문화는 적어도 눈에 보이는 호경기를 연출했다.

그러나 3만 달러 시대를 맞은 지금은 먹고 마시는 문화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유흥주점은 하루가 다르게 폐업을 하고 있고, 골목마다 들어섰던 노래방도 종적을 감춰가고 있다.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나던 회식문화도 차분하게 별미를 즐기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식사자리를 마치면 대개 커피점으로 자리를 옮겨 담소를 나누다가 집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유흥업소나 노래방이 설 자리를 잃는 것이다. 택시영업도 이전만 못하고 대리운전도 더 이상 호황 업종이 아니다.

2014년 세월호 침몰사고는 이 사회의 소비문화를 뒤바꾼 결정적 계기가 됐다.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세월호 침몰사고는 애도의 분위기 속에 이 나라 모든 향락문화를 올스톱 시켰다. ‘몇 달 이러다 말겠지’라고 생각했을지 몰라도 세월호 사고 이후 바닥을 찍은 유흥문화는 소비문화의 방향을 틀어놓았다. 세월호 사건 발생 시점은 때마침 소비문화의 변곡점이 되는 3만 달러 고지를 목전에 두고 있던 때이기도 하다. 3만 달러 시대를 맞으며 소비문화의 트렌드가 변화할 무렵에 세월호 침몰사고라는 변수를 맞은 것이다.

3만 달러 시대가 열리며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의 비중이 급격히 성장했고, 놀고 어울리는 대상도 종전의 직장 중심에서 가족중심 또는 개인중심으로 변해가고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급증하고 간편식 시장이 확대되는 것도 3만 달러와 연관된 소비 변화이다. 결혼을 기피하고, 출산을 꺼리는 의식구조를 갖는 것도 소득수준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종전까지 호황을 누리던 업종은 뒷걸음질 하고 새로운 소비 트렌드에 맞는 업종이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소비의 변화는 경제 및 사회 현상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모든 것을 정치 탓으로만 돌리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늦은 시간까지 술 마시고 유흥을 즐기는 사람들이 안 보인다고 해서 불경기라고 단정해 혀를 찰 필요는 없다. 온라인 쇼핑문화가 확산되면서 오프라인 매장의 매출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술을 마시던 돈은 애완견 용품을 사거나 새로운 레포츠를 즐기는 비용으로 옮겨갔다. 내 눈에 그런 돈이 안 보인다고 정치 탓하며 불경기라고 불평할 필요는 없다. ‘그때가 좋았다’며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이 누군가는 새로운 트렌드에 맞는 업종으로 옮겨 타 신나게 호경기를 누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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