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적금 늘고 투자자금 줄고 / 통화유통, 예금회전율 모두 ↓ / 길 잃은 자금 요구불예금 유입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시중에 돈이 풀리지 않는 ‘돈맥경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미·중 무역 갈등에 이어 일본과의 경제 갈등이 장기화되는 등 대외불확실성 고조로 경제 주체들의 투자심리가 얼어붙고 있어서다. 돈이 돌지 않으면 투자·소비 위축, 내수 둔화 같은 다양한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19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6개월 미만의 단기예금은 91조 4306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1년 전에 비해 8.7% 늘어난 규모다. 6개월 이상 1년 미만 정기예금도 162조 9071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1% 증가했다. 반면, 지난 1분기에 가계 및 비영리단체가 예금이나 보험, 주식, 채권 등으로 굴린 돈(자금운용)은 35조 4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전년동기 41조 3000억 원보다 14.3% 줄어든 규모다. 가계의 경우 주식 및 펀드 운용 자금이 3조 1000억 원이나 줄었다. 예·적금은 늘리고 투자자금을 줄이는 현상인 ‘돈맥경화’가 심해지고 있는 거다.
문제는 은행으로 쏠리는 돈이 다시 돌아야 하는데 예금회전율은 그러지 못하다는 점이다. 지난해 통화유통 속도는 0.72로 1년 전 0.74에서 더 떨어졌고, 예금회전율은 지난 1분기 3.5회로 줄었다. 직전 분기보다도 0.2회 더 줄었다. 통화유통 속도는 통화 한 단위가 일정기간 동안 각종 거래를 매개하기 위해 몇 번 유통됐는지 나타내는 지표로 그만큼 낮은 지표는 실물부분의 자금유동성의 축소를 의미한다. 여기에 회전율 마저 낮아졌다는 건 예금을 맡겨 놓고 인출하지 않는 사례가 많아졌다는 뜻으로, 사람들이 소비도 투자도 하지 않는 상황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가계와 기업이 돈을 인출해 쓸 곳을 찾지 못하다 보니 은행에 묵혀두고 있는 거다.
국내·외 경제불황과 증시 불안으로 투자처를 잃은 돈들은 은행권의 ‘요구불예금’으로 쏠리고 있다. 요구불예금이란 예금주가 언제든지 조건 없이 찾아 쓸 수 있는 예금으로, 이자가 거의 없는 수준이기 때문에 매력적인 금융상품이라고는 볼 수 없다. 투자나 저축성예금으로 큰 이자수익을 기대할 수 없어진 자금이 자유롭게 현금을 인출해 쓸 수 있는 요구불예금으로 몰렸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경기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어 주식·펀드 등 위험자산으로 자금이 흘러가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기준금리가 더 낮아진다고 해도 이미 예금에 묶인 돈이 나오기도 쉽지 않고 정부의 부동산 규제와 출렁이는 증시 현황 등을 고려했을 때 섣불리 투자에 나서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지역 경제계 관계자는 “부동산시장, 증권시장 모두 불확실한 상황이라 앞으로도 시중에 돈이 풀리지 않는 상황이 지속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송승기 기자 ssk@gg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