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일 정치부장

최일 정치부장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이재명 경기지사. 두 전·현직 광역단체장은 공통점이 많다. 

무엇보다 촛불의 힘으로 성사된 지난 2017년 5·9 장미대선을 앞두고 당시 제1야당이자 집권이 유력했던 더불어민주당의 예비주자로서 지지도 수위를 달리던 문재인 후보의 아성을 위협했다는 점이다. 비록 경선에서 문 후보의 낙승을 지켜봐야 했지만, 차기 대권을 예약해 놓은 듯한 분위기 속에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문재인정부 출범 후 시련에 빠졌다. 안 전 지사는 수행비서를 상대로 한 성폭력이 폭로되면서 하루아침에 대권주자 반열에서 파렴치범으로 추락했고, 이 지사는 친형 강제 입원, 개발 업적 과장, 검사 사칭 등의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미래 권력의 정점에 근접해 보이던 신진세력이 자연스럽게 제거되는 모양새가 된 것은 틀림없다. 

여기서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의 혐의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을 받는 과정에서 1심 무죄, 2심 유죄의 롤러코스터와 같은 극과 극의 판결을 받았다는 점이다. 

안 전 지사는 3심에서 유죄(징역 3년 6개월)가 확정돼 결국 영어(囹圄)의 몸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이 지사는 오는 12월 3심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2심 유죄 판결 후 실의에 빠진 두 사람에 대해 극명하게 엇갈리는 대목이 있다. 한때 충청대망론의 주인공이 될 것이란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안 전 지사에 대해선 전혀 구명(救命) 움직임이 없이 냉담했던 지역 정치권이 도지사직 상실 위기에 처한 이 지사 살리기에는 발 벗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일 세종시의회, 17일 대전시의회, 21일 충남도의회의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잇따라 이 지사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대법원에 제출하는 ‘탄원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충청권 민주당 광역의원들이 직권남용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 300만 원의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이 지사 살리기에 나선 것으로, 이들은 “사법부 판결을 존중하지만 변화와 혁신을 바라는 경기도민의 뜻도 존중돼야 한다”라며 “확고한 비전과 강한 추진력을 겸비한 이 지사가 도정을 정상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길 간곡히 요청드린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물론 야당에선 “법치주의 파괴 행위다”, “사법부를 무시하고 협박하는 행위다”, “경기도정 공백을 우려하기 전에 각 지역의 민생과 현안이나 잘 챙겨라”, “시·도정을 감시·견제하는 본연의 역할이나 잘하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 전 지사 탄원을 놓고 벌어지는 이 같은 여야의 정쟁을 넘어 기자의 눈에는 안 전 지사와 이 지사가 대비된다. 평소 지역 정치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안 전 지사의 몰락에 관해 안타까워하면서 유죄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안 전 지사가 당했다’라는 식으로 피해자인 김지은 씨를 비판하면서 두 사람 간의 관계는 한마디로 ‘성인 남녀 간 모종의 합의된 관계’, ‘애정행각’, ‘불륜’인데 안 전 지사가 억울한 심판을 받았다는 것이 주된 요지다. 하지만 공개적으론 이런 말을 꺼내지 못한다. ‘성인지감수성 제로’로 여성단체의 타도 대상이 되고, 성범죄자를 비호하는 것으로 매도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반면, 이 지사에 관해선 그의 억울함을 항변하거나 그를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지역 정치인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굳이 이 지사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려는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지역과는 그리 큰 관계가 없는, 관심 밖의 사안으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충청권 시·도의회에서 잇따라 탄원서를 제출하는 행태를 바라보면 그리 자연스러운 정치행위로 보이진 않는다. 민주당이 절대 다수를 장악하고 있긴 하지만 이재명이란 정치인이 충청권 광역의회 차원에서 릴레이 탄원을 해야 할 만큼 중대한 비중을 차지했던 인물인가 하는 데 대해선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지난 2017년 11월 권선택 전 대전시장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시장직을 상실하기 전 이처럼 조직적인 탄원 움직임은 없었다. 정작 우리 지역 자치행정의 막대한 공백이 우려될 때는 잠자코 있던 충청권 광역의회들이 이 지사 건에 대해선 일사불란하게 탄원에 나서는 것을 보며, 뭔가 윗선의 지령(?)에 지방의원들이 일렬로 도열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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