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준 사회부장

 

지방자치제 시행 후 민선 7기와 앞선 1∼6기 대전시정을 구분 지을 수 있는 요소는 많겠지만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꼽으라면 ‘자치·분권’이 아닐까 싶다. 지역민이 스스로 시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예전에 비해 다양해졌다는 데 큰 의미가 부여된다는 측면에서다. 지역민이 자치단체장을 뽑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의회를 통한 시정 참여에서 한 발 더 나가 직접 마을공동체 의제를 수립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예산을 집행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매우 제한적이지만 시민참여예산을 통해 직접 시정발전을 위한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킬 수도 있다. 민선 7기 들어 20억 원 수준이던 시민참여예산이 한 번에 100억 원 규모로 대폭 확대된 걸 보면 ‘주민 자치’에 대한 대전시장의 애정을 엿볼 수 있다.

대덕구 역시 ‘자치·분권’에 대한 주민의 기대에 가장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지자체 가운데 하나다. 얼마 전 대덕구와 대덕구의회는 ‘주민 행복 증진 조례’라는 걸 제정했다. 주민의 행복 추구와 행복 증진을 위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해 주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주민 중심의 행복한 지역사회를 실현하는 게 목적이다. 현재 대덕구는 이를 구체화시키기 위해 대덕구민 행복지표를 개발하고 있다. 구민이 생각하는 ‘행복’에 대한 다양한 요소를 정량지표로 개발해 구정에 접목시킴으로써 주민 중심의 구정이 펼쳐질 수 있는 기반을 더욱 확대한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그러나 한정된 권한과 열악한 지방재정상 이 같은 창의적, 지역 맞춤형 정책 추진은 한계에 봉착해 있다.

우리나라 국가 운영 시스템은 정부가 기획하고 예산을 편성하면 지자체는 그 예산으로 사업을 집행하는 구조로 돼 있다. 지자체 스스로 사업을 기획하고 예산을 편성하기도 하지만 매우 제한적이다. 국가 공공재원의 대부분이 정부에 귀속돼 있기 때문이다. 지자체 스스로 살림을 꾸려나갈 수 있는 환경이 안 된다는 얘기다. ‘지방분권’에 대한 요구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가 틀어쥐고 있는 사무를 지방으로 대폭 이양하고 그에 따른 재원을 지자체에 분배해야 지방자치제가 온전히 작동할 수 있다는 거다. 일자리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실업난, 특히 청년실업난은 전국적인 현상이지만 그 원인은 지역 특성에 따라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는 건 아직까진 정부의 몫이다. 공공재원, 즉 세금의 대부분이 정부에 귀속된 탓이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는 정부가 내려주는 예산 외에 별도로 대책을 추진하는 게 현실적으로 버겁다. 저출산·고령화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는 문제 해결을 위해 돈을 쏟아 붓고 있지만 ‘가성비’(투자 대비 효율)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늘 나온다. ‘주민 삶의 현장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고 맞춤형 처방을 내린다면 조금이라도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문재인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지방분권’의 폭을 넓히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왔고 ‘지방분권 개헌안’ 마련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지자체를 지방정부의 반열에 올리는 게 골자였는데 야당의 반대로 끝내 무산됐고 그래서 정부는 현재 개별 법률 개정을 통해 자치분권에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개점휴업이 법 먹듯이 일어나는 국회가 문제다. 여당은 국회 안에서, 제1야당은 툭하면 국회 밖으로 뛰쳐나가 장외투쟁으로 대립전선을 형성하는 탓에 민생법안 논의는 늘 뒷전에 밀려나 있다. 국가사무를 지방으로 이양하는 지방이양일괄법과 실질적인 자치분권 추진을 뒷받침 할 지방자치법 개정안 등 자치분권법안들은 국회 서랍 안에 잠들어 있다. 반년도 안 남은 20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면 이 법안들은 모두 자동폐기된다.

‘지방 소멸’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는 좁혀지기는커녕 더 벌어지고 있다. ‘2할 자치’의 현실을 타개하기 못 하면 국가 경쟁력은 낮아질 수밖에 없고 그만큼 지속가능성은 약화된다. 언제까지 정부와 국회가 모든 권한을 틀어쥐고 있을 셈인가. 지방의 창의성을 깨우고 자율 속에서 지역사회가 스스로 성장의 디딤돌을 놓을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건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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