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춘추전국의 혼란기를 거쳐 BC 221년 진시황이 첫 통일한 중국은 한족과 북방 이민족 간 쟁탈전의 역사인데, 대표적으로 남북조시대를 통합한 수를 비롯하여 당, 원, 청은 모두 이민족이 세운 나라들이다. 특히 북경은 북방민족인 몽고족이 남송을 멸망하고 대륙을 통일한 원(1271~ 1368)이 대도(大都)라는 이름의 신도시를 건설한 이래 명~청의 수도가 되어 700여 년 동안 역사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런데 역대왕조는 대부분 황허 북쪽에서 발흥했지만, 주원장(朱元璋: 1328 ~1398, 재위 1368~1398)이 일으킨 명은 강남에서 발흥하여 대륙을 통일한 첫 제국이다.

주원장은 난징(南京)을 수도로 삼고 전국을 통일했는데. 그의 넷째 아들로서 건국에 가장 공이 많았던 연왕(燕王) 주체(朱棣)가 2대 황제인 조카 건문제를 죽이는 정난의 변(靖難之變)으로 황제가 되더니 연경(燕京)으로 천도하며 북경이라고 했다. 정난의 변은 조선 초 수양대군의 계유정난과 비교되는데, 이를 비난하는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사초에 올린 김일손 등 신진사류가 처형되는 무오사화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진시황제를 비롯하여 중국의 역대 황제들은 사후에도 황제의 지위를 누리려는 욕심에서 진시황릉에서 볼 수 있듯이 황궁에 못지않은 대규모 능을 조성했다. 명의 3대 황제 영락제(永樂帝· 1403~1424)도 자신이 연왕으로 있던 연경으로 천도하기 전부터 황릉 조성에 나서서 무려 18년 동안 조성했다고 한다. 태조부터 16대 숭정제까지 16명의 황제가 있었지만, 북경 시내에서 북쪽으로 약 50㎞ 떨어진 텐서우산(天寿山) 기슭에는 집단 능(陵)은 수도였던 난징의 효릉(孝陵)에 묻힌 태조, 정난의 변으로 실종된 2대 황제 건문제, 탈문의 변으로 퇴위하여 북경 서쪽 금산에 묻힌 7대 경태제를 제외한 영락제부터 마지막 숭정제까지 황제릉 13기뿐이어서 '명 13릉'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황제 13명과 황후 23명 이외에 2명의 태자, 30여 명의 비빈, 1명의 태감이 묻혀 있다. 명 13릉은 난징의 효릉과 함께 2003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명 13릉은 북경에서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지수이탄(积水潭)역에서 내린 뒤 A출구로 나와서 차량 진행방향과 반대로 걷다 보면, 더성먼(德胜门) 버스정류장이 있다. 이곳에서 345支를 타고 창핑둥관루커우(昌平东关路口) 정류장에 내려 314번 버스로 갈아타고 장릉(张陵)이나 종점인 정릉(定陵)에서 내리면 된다.
명 13릉의 정문인 대홍문은 고즈넉한 여느 고궁의 정문 같은데, 대홍문을 지나면 양편으로 문무인상을 조각한 석물들을 비롯하여 코끼리, 낙타, 말 등 석상이 늘어선 신도가 마치 테마공원 같다. 황제 묘역은 남북 약 9㎞, 동서 약 6㎞ 되는 넓은 지역에 제전(祭殿), 방성명루(方城明樓), 보정(寶頂: 지하궁전 위 뚫린 언덕)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패루가 세워진 곳에서도 약 1㎞ 가량 들어가야 한다.
남쪽에서 능으로 들어가는 대문격인 능문(陵门) 있고, 그 뒤로 능은문(祾恩门)과 조선시대 왕릉에 제사를 준비하는 정자각과 같은 기능을 하는 능은전(祾恩殿)이 있다. 이곳에서의 하이라이트는 자금성의 태화전과 비교될 만큼 현존하는 명나라 건축물 중 가장 크고 완전한 것으로 꼽히는 능은전이다. 능은전은 자금성처럼 황제를 상징하는 노란 빛깔의 유리기와가 반짝인다.
명 13릉 중 일반 공개를 하는 곳은 난징에서 북경으로 천도한 3대 영락제의 장릉, 아담한 규모로 조성된 12대 융경제의 소릉, 묘역 조성에 가장 많은 예산을 쓴 14대 신종 만력제의 정릉 등 3곳뿐인데, 명 13릉의 특징은 산을 깎아 묘역을 조성하는 당(唐)과 달리 산기슭을 굴처럼 파고 들어가는 지하궁전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명 13릉의 여느 능이건 그 앞에 대형 석비가 세워져 있는데, 이무기 머리에 거북이 다리를 가진 대형 석비에는 아무 글자로 새기지 않는 무자비(無字碑)이다. 무자비는 백비(白碑)라고도 하는데, 무자비를 세운 이유에 관하여는 알려진 사실이 전혀 없다.
명 황릉은 패루가 세워진 곳에서도 약 1㎞ 가량 걸어가야 하는데, 신종 만력제(1563~1620)의 정릉도 지하궁전이다. 정릉은 전실과 좌·우실, 그리고 후실로 나눠지며, 각 궁전은 복도를 통해서 연결되어 있다. 전면에서 보았을 때 좌실부터 들어가는 길은 대리석으로 삼면을 치장했지만, 누수가 심해서 벽이나 바닥이 모두 질퍽거렸다.
10살 때 즉위하여 48년간 재위한 만력제는 임진왜란 때 조선에 군대를 파견해준 황제이지만, 정사를 돌보지 않고 일생 동안 주색에 빠져서 그의 집권기에 국력은 크게 쇠퇴했다. 또, 황태자 책봉 문제로 대신들과 갈등을 빚자 무려 25년 이상 공식적인 접견과 조회를 거부했다고 한다. 신종도 13년(1585)부터 6년에 걸쳐 조성된 정릉은 중앙의 전면에 생전과 마찬가지로 황제와 황제비가 나란히 앉은 용상도 만들었다. 1956년 정릉을 발굴했을 때 금은보석 등 3,000여 점의 보물이 쏟아져 나와서 1959년 정릉박물관을 세워서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는데, 지하궁전을 나와서 아래로 내려가면 ‘명13릉 박물관’이 있다. 이곳에서는 황후의 화려한 복식과 금으로 만든 주전자와 수저통, 청화백자를 비롯해 금실로 만든 익선관(翼善冠)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담으로 명 13릉이 있는 텐서우산 일대는 유명한 옥돌 생산지여서 팔찌, 가락지등은 물론 온갖 옥돌제품을 판매하는 기념품 가게가 즐비하고, 또 복숭아 주산지여서 여름철에는 복숭아 값이 매우 헐해서 갈증을 해결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