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일 정치부장

[금강일보 최일 기자] 신종 감염병 예방을 위해 사회적 관계에 거리를 두라는데, 선거는 해야 한단다. 사상 초유로 전국의 각급 학교 개학이 미뤄진 지 오래고, 전 세계인의 스포츠 축제인 올림픽도 1년 연기가 결정된 마당에…. 경기는 얼어붙었고, 서민들은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벅차다고 아우성인데도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선거는 예정대로 4월 15일 치러진다.

어느 순간 그에게 ‘적폐(積弊)’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현 정부 출범 직후부터 목에 힘을 주고 완장을 찬 채 이 땅의 오랜 폐단을 청산하겠다고 떠들던 한 정치인 얘기다. 선거가 가까워오자 그가 표변하고 있다.

제1의 국정 기조였던 ‘적폐’는 어디론가 쏙 사라졌고, 그가 속한 세력에서 타도 대상으로 삼아 경멸하던 저쪽 편에 서 있던 사람들을 끌어안는 쇼를 하면서 ‘포용의 리더십’으로 포장하고 있다. 급하긴 급한 모양이다. 하긴 이기는 것이 오직 선이요, 장땡인 세상이 정치판이니….

이 분이 발굴한 정치신인은 각기 보는 이에 따라 ‘변신’인지, ‘배신’인지, ‘소신’인지 모를 행보를 거듭하면서 지방의회를 거쳐 이제는 반대편 정당 소속으로 국회 입성을 노리고 있는 것도 아이러니다. 결과적으로 그 분께서 큰일을 해내신 것이니 말이다.

4년 전 20대 총선 당시 물갈이 대상으로 찍혀 공천에서 전격 배제되는 충격을 맛본 한 정치인은 즉각 소속 정당을 탈당해 무소속 출마를 감행, 당선돼 명예회복을 한 뒤 복당해 당권을 거머쥐었다. 진작 뒷방으로 물러났을 운명에 처했던 그는 4년 후 21대 총선을 진두지휘하고 있고, 4년 전 그를 쳐냈던 인사는 상대 당의 선거업무를 총괄하면서 1950년대 야당의 슬로건을 일성으로 내놓는 블랙코미디가 우리 정치판의 현실이다.

몇 년 전 파란당 입당을 모색했던 법조인은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이제 분홍당 점퍼를 입고 표밭을 누비고 있고, 수년째 서로 으르렁거리며 팽팽한 정적(政敵) 관계를 유지하던 한 국회의원 후보와 전직 단체장은 하루아침에 한 지붕 아래 모여 손을 맞잡고 정권 심판을 외치고 있다. 음주운전 등으로 다수의 전과를 보유한 한 출마자 측은 “미래를 말해야 할 때에 왜 과거를 들춰내느냐”며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이고 있다.

코로나19라는 요상한 놈이 활개를 치는 와중에 선거 정국을 맞아 그런지 ‘아이러니’와 ‘모순’이 일상이 된 듯한 요즘이다. 코로나19가 호재가 될 것으로 보고 그간의 패배를 되갚을 기회를 맞았다고 의기양양하던 야당에게서 최근 들어선 ‘역풍이 불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가 읽힌다. 위기 상황에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이 제각각 강하게 결집하는 양상을 띠며 예측 불허의 선거전이 전개되고 있으니, 중도층이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가 승패를 가를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여파로 투표소 입구에서 유권자 한 명 한 명에 대해 발열검사가 실시되는 풍경은 대한민국 선거사에 기록될 이색적인 장면이 될 것이다. 의심증상을 보이는 유권자는 별도로 마련된 기표소에서 투표하고, 투표 후 선별진료소에서 진단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니, 그렇지 않아도 투표소를 찾지 않던 ‘정치 외면층’은 투표소엔 발길도 얼씬하지 않을 것 같다. 지역구 정당 따로, 비례대표 정당 따로인 웃지 못할 여야의 꼼수 경쟁도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더한다.

코로나19로 투표율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지 않을까 걱정하는데,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좋은 방안이 있다. ‘총선용 현금 살포’라는 논란을 빚는 재난기본소득을 투표소를 찾는 유권자들에게만 지급한다고 발표하면 어떨까? 아마 역대 최고 투표율을 기록하지 않을까? ‘매표(賣票)’라는 비판을 살 바엔 차라리 노골적인 매표를 하고 투표율도 높이면 좋지 않나? 투표 인원이 너무 몰릴 것이 걱정된다면 차 있는 사람들만 대상으로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하든지….

씁쓸한 쓴웃음이 지어지는 덧없는 공상(空想) 속에 감염병과 뒤엉겨버린 이번 총선이 과연 어떤 결과를 낳을지 사뭇 궁금해지는, 이래저래 잔인한 2020년의 4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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