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어문계열 전공자라서 너무 민감한 걸까? 세상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용어가 아주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인데 그냥 넘어가 지지 않는다. 내가 불편을 느끼는 말은 적재적소에 사용되지 않는 용어를 비롯해 발음이나 철자가 틀린 경우이다. 그냥 넘기지 못하고 용어 사용의 오류를 지적하는 일이 생긴다. 그러다보면 “옳은 지적을 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듣기보다는 “대충 서로 알아들으면 됐지, 뭘 그렇게 신경을 쓰고, 따지느냐.”는 핀잔을 듣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도 시대에 맞지 않는 불편한 용어는 시대에 맞는 용어로 바꿔 사용할 수 있게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 방문해 교직원들과 회의를 한 일이 있었다. 회의 중에 반복적으로 ‘간부’, ‘간부수련회’ 등의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들렸다. 그냥 흘려들어도 될 일이지만 계속 귀에 거슬렸다. 그래서 발언권을 달라고 요청한 후 적절한 용어를 사용해 줄 것을 당부했다. 간부는 한자 ‘줄기 간’과 ‘나눌 부’를 합해 만든 말로 직역하면 ‘줄기 부분’이란 뜻이 된다. 사전은 ‘어떤 단체나 기관 등에서 지도적인 위치에서 중요한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일상적으로 별 거리낌 없이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용어이다. 하지만 나는 그 용어가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줄기(몸통) 부분이라는 뜻을 가진 간부라는 말은 전근대적 용어로 들립니다. 특정 학생을 간부라고 부른다면 나머지 학생들은 곁가지 같은 존재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모두에게 평등의식을 심어주어야 할 학교 현장에서 사용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표현 같습니다. 학교는 말할 나위 없고, 군대와 같은 수직문화 조직에서도 사용하기에도 적절하지 않은 용어 같습니다. 그냥 무언가 역할을 맡은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임원’이라는 말을 대체해 사용하면 좋겠습니다.” 조심스럽게 내 의견을 제시했더니 회의에 참석한 다수의 교직원과 학부모들이 동의해주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학교에 가서 또 회의를 할 일이 있었는데, 회의 자료에 또다시 간부라는 용어가 기록돼 있었고, 교직원들이 그 용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용어의 순화를 당부했다. 학교 측은 수용의사를 밝혔다. 이밖에 안내판에 장애인의 반대말로 ‘일반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도 부적절하다며 시정을 요구했고, 이 또한 즉시 받아들여졌다. 아주 오랜 시간 별다른 제재 없이 사용한 용어이다 보니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교육현장인 학교에서 수평적 평등의식이 확산되고 올바른 용어가 정착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상을 살펴보면 우리는 권위적이고 관료적인 용어를 아주 많이 사용하고 있음을 안다. 사회 곳곳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만, 자유와 평등의식을 키워야할 학생들이 생활하는 공간인 학교가 가장 먼저 부적절한 용어들을 청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시대와 전혀 맞지 않는 ‘훈육’과 같은 용어는 교육현장에서 사라져야 한다. 선발한 엘리트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인재’라는 말도 대단히 관료주의적 사고가 느껴진다. 사용하지 말아야 할 용어로 분류하고 싶다. 아주 심각한 차별을 드러내는 ‘특수반’이라는 용어가 학교 현장에서 사라진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일상의 용어는 사회의식을 반영한다. 과거에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하던 말도 시대가 변하면 어색하게 들려야 맞다. 구시대적 언어를 사용하면 스스로 불편함을 느껴야 한다. 문민정부를 탄생시킨 김영삼 대통령이 처음 한 일 중 하나가 ‘각하’라는 아주 권위적인 호칭을 없앤 것이다. 처음엔 다들 어색해 어쩔 줄 몰라 했지만, 지금은 누구도 그런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시대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언어는 사회성을 가진다. 자꾸 사용하면 익숙해지지만, 사용을 하지 않으면 저절로 소멸된다. 교육현장에서 권위주의적 용어를 몰아내고 자유와 평등의 이념에 걸맞은 용어들이 뿌리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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