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한 명절 만들기
함께 나누는 명절노동(가사노동 함께하기)
성평등한 언어와 행동
시가, 처가 방문 공평하게
평등명절 지낸 이야기

성평등 보이스단 모집 이미지. 대전시 제공

[금강일보 신성룡 기자]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추석에도 건강한 명절을 보내기 위한 운동이 한참이다. 정부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이례적으로 고향방문과 친지방문 자제, 마스크 착용 생활화, 역귀성 자제 등을 간곡히 요청하고 있다.

이동이 제한되면서 명절 풍경이 바뀌고 있는 가운데 명절 때마다 문제가 되고 있는 양성평등의 현주소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대전시는 추석 등 명절 뿐 아니라 가정 깊숙한 곳에서부터 양성평등을 이루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시행 중이다.

#. 결혼을 앞둔 A 씨가 처음 만난 시동생은 앞니가 빠진 열 살 어린이였다. A 씨와는 20년 가까운 나이 차이가 나지만 시동생을 ‘도련님’이라고 불러야했다. 특히 추석 같은 명절이 되면 딱히 강요를 하지 않아도 위계에서 느껴지는 부담감은 더 심해진다.

성평등 명절 사전. 대전시 제공

유교적 전통이 강한 우리나라는 가정 내에서는 남녀의 구분이 있고 하는 역할도 달라 대체로 남성들은 여유있는 명절을, 여성들은 힘겨운 명절을 보내는 게 아직은 일반적이다. 명절이 다가오면 시부모 만나기, 친가와 처가를 균형있게 챙기기, 가사일을 어떻게 나눌 것인 지 등 디테일한 일상들을 놓고 부부 간, 부모 자식 간, 고부 간 갈등이 표면화되기 일쑤다.

불평등한 가족 호칭은 명절 스트레스 중 큰 비중을 차지한다. 명절이 되면 가족, 친지들이 모이면서 호칭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다. 최근에는 ‘시댁’, ‘서방님’ 등 유독 남편의 가족 구성원만 높여 부르는 불평등에 대해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에 따르면 최근 시민 117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명절에 성차별적인 언어를 들은 적이 있나’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83.2%가 ‘그렇다’라고 답했을 정도다.

다소 불평등하게 느껴지는 가족 간 호칭은 명절에 경험하게 되는 성차별적 언어 중 하나다. 남편 쪽 가족은 ‘시댁’(媤宅)이라 높이지만, 아내 쪽 가족은 ‘처가’(妻家)라고 낮춰 부르는 게 대표적인 예다.

남편의 부모님은 ‘아버님’ ‘어머님’이지만 아내의 부모님은 ‘장인’, ‘장모’다. 남편 형의 부인은 ‘형님’이라 부르지만 아내 오빠의 부인은 ‘아주머니’로 불리기도 한다. 남편은 처가에 ‘처남’, ‘처제’ 등 보통말을 쓴다면 아내는 시가를 향해서 높임말을 쓰게 된다.

이에 여성가족부는 추석 명절을 맞이해 가족호칭을 새로 제안했다. '도련님', '아가씨' 등 기존 가족 호칭에 대한 문제가 제기됨에 따라 설문조사, 사례 공모 및 토론회, 전문가 검토 등을 통해 일상생활에서 큰 거부감 없이 사용할 수 있는 호칭을 선정했다.

2018년 추석부터 진행한 성평등 명절사전 시민 제안 의견 중 꼭 써봐야할 단어와 문장을 뽑아 만든 ‘성평등 명절 단어장(사전)’에는 친가, 외가, 친할머니, 외할머니 등 친(親)과 외(外)로 구분해서 쓰는 대신 아버지 본가, 어머니 본가로 풀어쓰자고 제안했으며 친할아버지, 외할아버지와 친할머니, 외할머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로 통일해 부르는 것이 좋다고 권했다. 시댁 대신 시가로 부르고 집사람과 안사람, 바깥사람은 모두 '배우자'로 부르는 것이 좋다는 제안도 나왔다.

대전시는 시 공무원의 성인지감수성 향상을 위해 이러한 내용의 성평등 명절 사전을 시 홈페이지 및 시도포털시스템에서 운영 중인 ‘성인지감수성 충전소’에 게재하는 등 양성평등을 위해 일상에서 쓰는 단어부터 바꿔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시는 성인지감수성 충전소 활성화를 위해 성인지감수성 자가진단, 성인지 교육 등을 담은 웹툰을 게재하고 하반기 사회이슈에 따라 성인지 감수성 향상을 위한 내용도 수시로 게시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성평등에 대한 남성의 관심과 역할을 제고하고 구조적인 성역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다양한 계층의 의견수렴으로 소통과 공감의 성평등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성평등 보이스단을 모집·운영할 계획이다.

성평등 보이스단은 ‘성평등에 대한 목소리(Voice)를 내다’와 ‘성평등에 앞장서는 남성들(Boys)'이라는 중의적 의미로 가정과 직장, 지역사회의 성평등 문제를 솔직담백하게 이야기 나누고 고민해 성평등 문화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는 남성들의 모임이다.

중장년 남성들은 양성평등을 자신의 문제로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성인지감수성 향상을 통한 인식개선이 필요하며 ‘남자다움’에서 벗어나 남녀가 평등할 수 있도록 남성들의 공감과 실천을 이끌어내는 게 중요하다는 게 시의 설명이다.

추석 등 명절의 호칭 개선 문제에서도 중년 남성들의 역할이 중요한 상황이다. 결국 여성 위주로 추진되고 있는 중장년 양성평등 교육을 남성이 공감하고 참여하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한다면 성평등 인식 개선은 더욱 빠르게 이뤄질 수 있게 된다.

시는 50~60세 중·장년 남성 20여 명으로 성평등보이스단을 구성해 우리사회의 가족 문제를 토론하며 대안적 모델을 만들어가는 성찰적 형태의 모임을 활성화 할 예정이다.

이는 세대별 성평등 격차 완화, 남성참여 방안 등을 마련하고 50세 이후 중·장년 남성을 대상으로 지난해 성평등 정책 아이디어 공모로 채택 된 사업으로 은퇴를 앞두고 가사활동 등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더불어 추석뿐만 아니라 가사노동에 대해 생존을 위한 노동으로 인식하고 정서적 관계 맺음에 대한 훈련으로 중년남성들의 심리적 안정을 도모하며 ‘오팔세대 홀로서기’ 맞춤 강좌를 개설, 자립역량 강화와 삶의 질을 제고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사회변화에 따른 성역할의 편견을 깨고 성평등에 대한 남성들의 공감과 실천 활동을 확대할 계획이다.

김경희 대전시 성인지정책담당관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 또한 성평등 공감 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다. 시는 50대~60때 남성들이 가족을 돌보고 사회를 돌아보면서 가부장적인 부담을 내려놓고 균형 잡힌 노후를 살아갈 역량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며 “남성들이 은퇴이후 삶에서 실생활에서 적용 가능한 요리, 세탁 등의 기술을 익힘으로써 스스로 삶의 질 향상과 자기 효능감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신성룡 기자 dragon@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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