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 확산세 탓에 정부와 각 지자체는 추석 연휴 동안 고향 방문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따라 30일 귀성 첫날 고속도로 교통량은 457만대로 지난해보다 10% 감소한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고향에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수출과 내수의 동반 부진으로 회사들은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서비스업계는 영업금지 또는 제한을 받아 고향길 채비가 어려워서다. IMF 외환 위기 때가 그랬듯 코로나19로 인한 최악의 경제 상황은 가장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다. 가장들은 생각한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그토록 많은 힘겨움을 어떻게 ‘침묵’으로 견뎌냈을까. 편집자주.

 

영화 침묵 (Heart Blackened, 2017).

◆침묵이 가장 자연스러운 자 ‘아버지’

침묵의 공간은 깊고 묵직하다. 어디로든 새어 나가는 빛처럼 말은 빠르게 뻗어 내달리지만 침묵은 하나의 공간을 틀고 앉아 점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침묵엔 중력의 힘이 작용한다. 공간을 점유하여 시간과 공간을 빨아들이는 말 없는 영향력. 하지만 침묵이 하나의 낱말이 되어 우리에게 의식화되고 영향력을 주려면 사건이 필요하다. 증거를 댈 수 없지만 어떤 일이 일어났고 뭔가 말 못 할 이야기가 있을 거라는 의구심의 사건 말이다. 즉, 사건이 있어야 침묵한 자의 침묵을 주목하게 되고 침묵을 터트리고 싶은 욕구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침묵의 다른 말엔 아버지가 있다. 말이 없는 자, 그래서 존재하지 않는 자로 인식되는 자, 침묵이 가장 자연스러운 자, 아버지 말이다. 신해철은 넥스트의 <아버지와 나>라는 곡에서 아버지를 침묵으로 표현했다. “집안 어느 곳에서도 지금 그가 앉아 쉴 자리는 없다 / 이제 더 이상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내와 다 커버린 자식들 / 앞에서 무너져 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한 남은 방법이란 / 침묵뿐이다” 그렇다. 우리 인류의 침묵이란 낱말엔 ‘사건'’과 ‘아버지’가 있다. 침묵의 이 두 가지 오랜 상징을 절묘하게 끌어와 아름다운 미학으로 완성한 것이 영화 <침묵>이다.

◆딸과 약혼녀 사이에 선 ‘임태산’

사건은 재력과 사랑을 다 가진 남자 ‘임태산’(최민식)의 삶에서 시작된다. 약혼녀이자 유명가수인 ‘유나’(이하늬)는 그에게 행복 그 자체다. 하지만 딸 ‘임미라’(이수경)는 철없는 딸 그 자체일 뿐이다. 흡사 사랑을 선택한 불륜남과 그걸 질투하는 딸의 관계처럼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도 응원할 수 없다. 딸은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어르며 달래야 할 대상이고, 사랑은 우리가 꼭 손에 쥐고 싶은 행복이기 때문이다. 또한 딸은 아버지의 행복을 위해 착한 스탠스를 보여야 하고, 새로운 사랑은 마음을 유혹해 재산을 노리는 방해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혹여 사랑하는 사람과 딸의 관계에서 다른 감정이나 정의를 규정하더라도 이 둘은 결코 공존할 수 없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인류의 마음속에서 끄집어져 그리스 신화가 되고, 신들이 알려준 그 질투와 의심이 인류의 지워지지 않는 욕망이 되었듯 말이다. 한 사람이 너른 마음을 품지 못한다면 그 갈등은 결코 균형을 찾지 못한다.

◆정말 딸이 죽인 걸까…

그런 묘한 긴장감에서 시소를 타던 영화는 오래 가지 않아 균형을 깬다. 약혼녀인 ‘유나’(이하늬)가 교통사고로 살해돼 발견되면서 딸 ‘임미라’(이수경)가 용의자가 된 것. 그날 밤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딸 ‘임미라’(이수경)는 술에 취해 약혼녀인 ‘유나’(이하늬)의 섹스 동영상을 발견했고, 미움과 원망을 폭발시킨다. ‘임태산’(최민식)이 차마 예상하지 못할 둘 사이의 욕설이 난무한다. 둘의 파경이 아버지, 약혼녀, 딸의 공존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유나’(이하늬)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여자로 재정립된다.

그래도 그렇지 정말 딸이 약혼녀를 죽인 걸까. 관객의 심증은, 아니 감독의 주장은 딸이 용의자라는 것에 가까워간다. 딸이 ‘유나’(이하늬)를 얼마나 증오했는지 살인 게임을 만들었다는 폭로로 말이다. 그리고 ‘유나’(이하늬)의 섹스 동영상이 그녀의 죽음을 정당화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딸은 기억하지 못한다. 술에 취했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원망과 증오가 가히 심했기에 어쩌면 자신이 죽였을지도 모르지만 도무지 그날 밤만큼은 조금의 기억도 없다. ‘임태산’(최민식)은 말한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겠어요”라고.

◆진실이 담긴 영상

‘임태산’(최민식)은 최고의 변호인단을 마다한 채 미라의 무죄를 믿고 보듬어줄 젊은 변호사 ‘최희정’(박신혜)을 선임한다. 무죄가 아닐 거라고 그도 조금은 의심하는 걸까. 미라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을 둘러싸고 치열한 법정 공방이 진행되지만 미라의 무죄는 좀처럼 밝혀지지 않는다. 오히려 딸이 ‘유나’(이하늬)를 죽였을 거라는 심증만 굳혀간다.

그러던 중 사라진 그 날의 CCTV 영상을 가진 유나의 팬 ‘김동명’(류준열)의 존재가 드러난다. 영상 카메라 가게를 운영하는 그는 유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지켜보는 게 그의 행복이다. 그가 가진 영상에 모든 진실이 담겼다고 믿는 ‘임태산’(최민식)은  ‘김동명’(류준열)에게 한 가지 거래를 제안한다. 정말 딸이 약혼녀를 죽였다고 믿는 걸까. 그렇다면 딸을 무죄로 만들기 위해 영상을 없애려 하는 걸까. 아니면 다른 어떤 음모와 덫이 놓여있는가.

◆침묵의 민낯은 ‘눈물’

우리는 침묵의 공간에 들어가야 한다. 왜 유나의 죽음과 딸의 기억은 침묵하고 있는지 그 침묵의 공간을 점유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관객이기 때문이다. 정지우 감독, 그가 늘 그래왔듯 영화 <침묵>에도 은유와 절제의 미학이 관통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침묵을 터트리려는 관객의 욕망을 십분 이용하면서도 침묵의 공간이 왜 존재했고 존재해야만 하는지 이해를 구하고 있다. 그것이 그가 만든 <해피엔드>, <이끼>, <은교>와 다른 은유와 절제의 영상이다.

덧붙여 스포일러인 듯 아닌 듯 미리 말하고 싶은 게 있다. ‘임태산’(최민식)의 복심인 ‘정승길’(조한철)의 쌀국수 먹는 장면을 주목하라고. 그곳엔 침묵이란 낱말에 담긴 ‘사건’과 ‘아버지’를 단번에 집어삼키는 눈물이 있다. 바로 침묵한 자들이 숨겨야 했던 눈물이야말로 침묵의 민낯이었다는 게 정지우 감독의 통찰이다.

고향에 못 가는 가장들이여 침묵하지 마라. 홀로 울지 마라. 그대가 뒤늦게 아버지를 이해했듯 지금이라도 가족에게 이해를 구하라. 올해는 너무 힘들다고. 힘들어서 말없이 버티는 게 어려울 것 같으니 부디 등을 다독여달라고.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충격은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힘차게 견뎌내도록 올 추석엔 가장에게 힘을 불어넣자. 정은한 기자 padeuk@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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