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김도운 논설위원] 우리 민족은 고대에 중국과 인도로부터 유교, 불교, 도교를 받아들여 그 교리를 금과옥조로 삼아 살았다. 그래서 한국 전통의 의식 및 사상을 말할 때는 ‘유불선(儒佛仙)’의 융합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근대 이후에는 기독교 문화가 자본주의와 함께 밀려 들어와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뒤바꾸어 놓았다. 또한, 근대 이후에는 동학(천도교)을 시작으로 원불교, 증산도 등이 새로운 민족종교와 사상의 한 줄기로 자리를 잡았다. 과거와 비교해 한국인의 의식은 많이 복잡해지고 다양해졌다.

한국인의 의식을 지배하는 많은 의식구조 가운데 가장 뿌리 깊고 생활 속 내면에 침투한 사상은 아무래도 유교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유교 사상은 조선왕조 500년 동안 국가 통치이념이었고, 그 이전에도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를 거쳐오면서 민중의 생활과 사고를 지배했다. 유교는 인간 중심의 사상으로 모든 이들을 인격적으로 완성된 인간으로 길러내는 일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유교 이념이 모든 인간 중심에서 승자 중심으로 변질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유교 사상은 지금도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가장 깊숙이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에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신앙적으로 불교나 기독교를 믿는 신자라 할지라도 생활 규범이나 가치관은 유교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것이 사실이다. 현대에 이르러 유교의식과 생활방식은 많이 희석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가장 많은 이들에게 가장 깊이 박힌 사상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한·중·일이 모두 그러할 진데, 그중 한국이 가장 유교적이라 할 수 있다.

유교가 추구하는 가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로 요약된다. 자신의 수양에서 시작해 가정을 무사히 이끌고, 나아가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 유교식 사고방식이 추구하는 최고의 선(善)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유교적 가치관이 깊이 박힌 한국인들은 출세하여 이름을 드높이는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어느 민족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의미를 부여한다. 입신양명은 유교 가치의 으뜸인 효(孝)를 가장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덕목으로 보았다.

그래서인지 출세하고자 하는 한국인의 욕망은 남다르다. 출세하면 안정적으로 재물을 얻을 수 있고,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출세로 인해 온 가족이 덕을 볼 수 있다는 인식도 무척 강하다. 출세는 어느 한 조직 내에서 차근차근 준비하고 다져가며 지위가 서서히 상승하는 방법과 선거 등을 통해 단숨에 지위가 수직으로 상승하는 방법이 있다. 차근차근 밟아 올라갈 기회를 잃었거나, 성격상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선출직 자리에 도전하기도 한다.

그 자리에 어울릴 것 같지 않고, 능력이 모자라 보이던 사람도 막상 지위에 올라 지위에 맞는 품행을 보이고 능력을 발휘하는 걸 보면서 사람들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을 한다. 실제로 그러한 사례를 많이 목격하게 되고, 대부분 사람은 그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자리가 사람을 망친다”라고 말하고 싶다. 실제로 그런 사례를 많이 보았다. 굳이 그 자리를 차지하지 않았으면 찾아오지 않았을 불행을 경험하는 이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한번 권력을 맛본 사람은 그 달콤함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무리한 일을 벌이고, 결국 몰락하기도 한다.

역대 대통령의 몰락을 지켜보며 그들이 굳이 대통령이 되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을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대통령뿐 아니다. 출세해서 남이 부러워하는 지위에 올랐다가 훗날 불행한 삶을 살게 되는 이들을 너무도 많이 보았다. 그러니 자리가 사람을 망친다는 말은 공연한 말이 아니다. 욕심을 비우면 의외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인생은 성공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다. 누구나 인생의 최대 목표는 행복이다. 행복하면 된다. 자리는 성공을 만들어 주는지 몰라도 행복을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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