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다움에 대한 법원 판결 엇갈려
여성계, “사회적 강요 인식 전환 돼야”
[금강일보 김정섭 기자] 성폭력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에서 소위 ‘피해자다움’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대법원이 ‘피해자다움’이 없다는 것으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따져선 안 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지역 여성단체는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적 인식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16일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 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2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편의점 본사 직원 A 씨가 2017년 4월 피해자 B 씨가 일하는 편의점을 방문해 성추행한 이 사건에 대해 1심은 A 씨에게 벌금 400만 원을 선고하고 40시간의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했지만 2심은 CCTV 영상에서 B 씨가 신체접촉을 피하려고 하면서도 종종 웃는 모습을 보였고 재판 과정에서 일부 진술을 뒤집는 등 진술이 일관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2심 판결과 관련해 CCTV 영상에서 보인 ‘피해자의 웃는 얼굴’을 해석한 방식을 문제 삼았다. 재판부는 소위 피해자다움이 없다는 이유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한 것은 잘못이라고 봤다. 편의점 본사 직원과 편의점 점주라는 업무상 관계 등을 감안해 그 의미를 판단했어야 한다는 거다.
피해자다움은 성범죄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가 이 사건 당시 또는 직후 행동이나 모습, 성범죄 신고로 이어지게 된 경위나 과정, 피고인과 피해자와의 평소 관계 등을 종합해 살펴보는 기준을 말하는 데 여성계는 피해자다움을 성폭력에 대한 사법기관의 통념으로 규정하고 이를 줄곧 비판해왔다. 사건을 정의롭게 해결해야 할 사법기관이 ‘왜 당시에 웃는 표정이었나’, ‘왜 이제야 신고를 했나’,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았나’ 등 ‘피해자다움’에 대한 통념에 갇혀 책무를 다 하지 않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대전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사건의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 법원이 피해자다움을 들여다볼 수는 있지만 편견으로 이를 해석하는 것이 문제다. 더 심각한 건 성폭력 피해자들이 사건 이후 일상생활을 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여전히 남아있다는 거다.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것은 고정관념이고 이는 피해자의 삶을 옥죄는 사슬로 남는다”며 “피해자의 용기 있는 대응에도 불구하고 호소의 진정성을 의심받아 사법기관뿐만 아니라 여론도 가해자의 편에 선 사례가 많기 때문에 자신의 피해를 숨기고 사는 피해자들도 많을 것이다.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적 고정관념이 사라져야 피해자가 일상에 복귀할 수 있고 이들이 평생 피해자성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2차 피해에서도 자유롭게 된다”고 말했다.
김정섭 기자 toyp1001@gg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