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 VS 항우 최후의 승자는?
유방의 리더십은?
사면초가?

출처 - 인물세계사
출처 - 인물세계사

천하통일의 라이벌 항우와 유방

중국을 가장 먼저 통일한 왕은 진시황제이다. 이러한 진시황제는 많은 정책들을 펼치며 부국강병을 꿈꿨다. 하지만 정책을 펼칠수록 사람들의 민심은 낮아지고 오히려 원성만이 높아졌다.

이러한 난세에 새로운 인물들이 많이 나왔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유방과 항우이다. 이 두명에 의하여 중국은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되었다.

 

출처 – 중국인물사전
출처 – 중국인물사전

항우

항우는 초나라 최후의 명장 향연의 손자이다. 항우는 작은아버지 항량 밑에서 자랐다.

항우는 뭐든지 하는 대단한 인물이라고 사람들은 흔히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항우의 모습은 달랐다.

항우는 어릴 때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하지만 진득하게 끝까지는 배우지 못하였다. 글을 배울 때는 자신의 이름만 쓰면 된다며 회피하고, 무술은 1대1에만 소용이 있다며 끝까지 배우지 않았다.

항우는 호탕한 성격으로 적과 아군의 구분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이러한 점 때문에 군 지휘관으로서 탁월한 실력을 발휘하였다. 하지만 이는 왕의 자리를 노리는 항우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하여 많은 적들을 생산하게 되었다.

 

출처 – 중국인물사전
출처 – 중국인물사전

유방

유방은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이러한 유방은 중국 최초의 서민 출신 황제가 되었다.

귀족 출신도 아닌 유방이 왕이 된 것은 신기한 일이다. 유방이 왕이 된 이유는 같은 서민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생각된다.

유방은 활발한 성격의 소유자로 새로운 만남을 좋아하는 사교적 성격이었다. 또한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는 스타일이었다. 이러한 유방이었기 때문에 뛰어난 인재들을 많이 모을 수 있었다.

 

최후의 승자는 누구?

항우와 유방 두 명의 인물만 놓고 본다면 항우가 더 능력이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후의 승자는 유방이었다.

유방은 뭐든지 수용해주는 스타일의 리더십을 가진 인물이었다. 반면, 항우는 강직한 스타일로 다소 공포적인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리더십의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두 인물의 차이를 만들게 되었다.

 

초반만 하더라도 항상 항우는 유방에게 승리하며 유방을 죽일 기회도 많았다. 하지만 항우는 그러한 기회를 번번히 져버렸다. 여기에 항우의 공포적인 리더쉽과 더불어 공정하지 못한 절차로 항우의 진영에는 점점 사람들이 줄게 되었다.

이후, 항우 내부는 점점 무너지기 시작하였고 최후의 전투에서 항우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사면초가?

사면초가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이 고사성어의 유래는 항우와 유방의 전투에서 나오게 되었다.

사면초가는 사방이 초나라 노래라는 뜻으로,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어떻게 할 수 없는 곤란한 사항을 이르는 말이다.

사면초가라는 말이 생긴 이 전투에서 항우는 끝내 자결을 선택하며 허무한 끝을 맞이하였다.

 

항우와 유방의 시작은 많이 달랐다. 유방은 서민 출신으로 천천히 올라왔고, 항우는 명가 출신으로 좋은 시작을 하였다.

하지만 항우는 주변 말을 듣지 않았고, 유방은 주변 말을 잘 수용하였다. 이러한 점은 뒤로 갈수록 격차를 줄여 마침내 유방을 역사의 승자로 만들어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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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통일의 라이벌 항우와 유방

유방 VS 항우 최후의 승자는?
유방의 리더십은?
사면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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