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승 충남농업기술원 화훼연구소 숙근팀장

[금강일보] 꽃이 예쁘게 진화하는 이유 중 하나가 꽃가루를 옮겨주는 곤충들을 유혹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꽃도 수정이 되어야 살아남기 때문에 벌을 유혹하기 위한 꽃들의 생존 경쟁도 치열하다. 벌들의 눈은 자외선까지 볼 수 있어 꽃들은 꿀로 통하는 길을 가장 잘 보이도록 화려한 무늬로써 활주로 역할을 하도록 진화하였다. 대신에 벌은 꿀과 화분을 가져가서 벌의 번식을 위해 사용한다.
최근 화려한 꽃보다 더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이 미스트롯2 방송이다. 미스트롯2는 참가자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의 재능을 맘껏 펼쳐 보이고 이에 전국 시청자들이 인기투표 방식으로 참여하는 경연프로그램이다. 이와 유사한 것이 영국에서 진행되는 ‘도전! 꽃들의 전쟁’이 있다. 전 세계의 아마추어 플로리스트와 조각가 10팀이 참가하여 곤충모형에 창의적으로 꽃을 심거나, 살아있는 모델에 꽃으로 만든 옷을 입히거나, 대형 모빌을 만드는 등 여러 가지 대형의 아름다운 작품을 경연하는 프로그램이다. 경연 참가자들은 꽃의 색과 수명을 고려하여 창의적으로 작품을 제작하면서 기획자의 의도대로 잘 표현하고자 한다. 1위 당선자에게는 큐세 런던 왕립식물원에서 특별작품을 디자인할 기회가 주어진다. 영국 왕실에서는 세계의 여러 꽃을 수집하여 창의적이고 아름다운 왕실의 정원문화를 창조해 가고 있어 우리가 상상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대단한 가치를 부여하고 꽃 하나하나가 귀중하게 다루어진다.
동양 문화권인 일본 또한 백제에서 건네준 국화를 ‘천황의 꽃’이라 해서 대단히 귀중한 가치로 평가하고 있다. 국화꽃 기르기 경연에서 우승을 하면 천황의 친척인 귀족의 상을 받게 되고 그것을 가보로 여겨 후세에 전해주는 관습이 있다고 미국의 인류학자 베네딕트는 ‘국화와 칼’이라는 책을 통하여 전 세계에 소개한 적이 있다. 특히 일본은 집에 불당이 있어 일년 내내 꽃을 소비하는 문화가 있다. 최근 도쿄 올림픽을 문화올림픽으로 치르기 위해 ‘화훼진흥법’을 제정하여 ‘요람에서 무덤까지 화육(花育)하자’는 모토로 꽃 소비를 촉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 먹기 살기 힘들었던 시기를 겪으면서 꽃은 사치품으로 인식되어 버렸다. 예를 들어 ‘꽃 선물보다는 먹는 것이 중요하지’, ‘꽃 대신 돈으로 달라’ 등의 문화가 일반화되었다. 최근에는 청탁금지법 시행과 코로나19 등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꽃 소비가 더욱 위축되었을 뿐만 아니라 화훼 판매가격 하락으로 작목전환을 하는 재배 농가들이 증가하는 악순환으로 화훼산업이 타격을 받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도 ‘화훼진흥법’이 제정된 것은 늦은 감이 있지만 단비같이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제는 현장의 소리를 경청하여 화훼 선진국과 같이 현실적인 세부시행령 제정으로 화훼 재배 농가들은 물론, 국민들에게도 ‘꽃’이 주는 행복과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 느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충남농업기술원 화훼연구소는 지난 22년간 127품종의 국화품종을 개발하였다. 대표적 성과로 연분홍색의 ‘보라미’ 품종은 겨울철 aT화훼공판장에서 출하율 2위를 달성하고 판매단가에서도 외국 품종보다 500~1000원이 높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품종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2019년 대한민국 우수품종상을 수상한 진한 노랑색의 ‘예스홀릭’은 충청인의 마음씨처럼 화색의 따뜻함으로 소비자를 홀린다.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노랑색의 화단국화 ‘금방울’은 다복한 반구형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넉넉한 미소를 짓게 한다.
또한, 자주색의 스프레이국화 ‘예스루비’ 등 국산 품종들은 지난해 50일 동안 지속된 장마 등 이상기후에 굴하지 않고 일본 등에 연간 45만본을 수출하였다. 이러한 국화 수출 성과로서 세계적 수준의 절화품질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게 되었고 내수시장의 가격지지(수출량을 내수시장의 7% 수준)가 가능하여 국내 농가를 보호하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조선시대 강희안 선생이 발간한 최초의 원예책자인 ‘양화소록’은 국화를 통해 기다림의 미학을 배우고, 연꽃에서 순수함의 정신을 발견하고, 추위를 무릅쓰고 꽃망울을 터뜨리는 매화에게서 꿋꿋한 의지를 배울 수 있도록 했다. 650년 전에 사대부들에게 화육(花育)의 중요성에 대한 가르침을 주었다. ‘꽃’은 나만의 창조적인 작품을 만들면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해 주고 꽃의 독특한 색과 향은 불안감을 해소해 준다. 말없이 꽃이 주는 행복에 감사하는 마음과 화훼산업의 중요성을 한 번 더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