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장

[금강일보] 3월 길모퉁이 울타리에 개나리꽃이 환하게 피어있고 정원에는 하얀 등불같은 백목련이 봄바람에 몸을 흔들고 있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소리없이 피어난 꽃들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을 아름답게 확인시키고 있다. 또한 아름다움에 대한 감격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한 것이며 눈에 보이는 것은 늘 변하고 일시적인 것임을 깨닫게 한다.

이와 같이 계절이 바뀌듯 사람은 누구나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지난날을 회고하면서 아쉬움에 대한 성찰과 각성으로 한층 성숙해진다. 인류 역사도 동서고금을 통해 과거에 매달리지 않고 법고창신(法古創新)으로 현재를 새롭게 고치고 혁신을 거듭했다. 세계사적으로 지난 20세기는 세계 인류의 공생공영보다 약육강식의 논리로 강자와 약자를 구분하여 식민지 쟁탈로 끔찍한 살상과 약탈이 자행된 시대였다. 그러한 야만의 시대 속에서 우리 민족은 불행하게도 일제의 야망에 굴복했다. 더구나 일제 식민지로부터 벗어난 후에도 3.1만세 운동의 숭고한 정신과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계승하지 못하고 또 다시 외세로부터의 해방과 민족 분단의 극복을 위한 역사적 과제를 현재까지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경제 제일주의로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도약하여 사람들의 경제적 삶이 옛날보다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품위를 잃었고 공공의 사회적 윤리가 땅에 떨어졌다. 이제 우리는 갖지 못한 것보다 이미 갖고 있는 것으로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과거의 선택이 반드시 미래에도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부자가 되는 것과 귀한 신분을 얻는 것은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이지만 도(道)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취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공자의 말이 고리타분하게 들리지 않는다. 도(道)는 인간 스스로 삶을 통해 일구어 가는 생활 그 자체이며 인간이 지녀야 할 최소한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돈 앞에서 무너지고 권력 앞에서 비틀거리며 살아야만 했던 시대에 살았다. 요즘 방송과 언론에서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반사회적 일탈 행위에 대하여 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온 나라가 야단법석이다. 물론 어느 누구보다도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깨끗해야 할 사람들의 사회 통념을 벗어난 소행은 비난 이상으로 지탄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그러한 반사회적 투기 행위가 어제오늘만의 사태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정당한 노동에 의한 소득보다 비정상적 투기 소득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누구나 할 것 없이 법을 가장한 편법으로 부동산 투기에 집중하여 투기 열풍은 일반화되어 왔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욕망을 실현할 수 있다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에 사로 잡힌 ‘파우스트적 충동’으로 세속적 상업주의에 현혹돼 정신을 빼앗겨 자기 삶의 규범을 지니지 못한 채 살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소욕지족(小欲知足)의 마음가짐으로 작은 것과 적은 것으로 만족하며 자연을 벗 삼아 시와 함께하는 풍류의 삶을 살았다. 그런데 일제 식민 통치시대와 그 이후 친일 반민족자들의 온갖 반인륜적 행위들이 일반적 관행으로 굳어져버렸다. 그러한 부정한 관행을 단 한 번도 바로잡지 못한 결과,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되어 있는 총체적 갈등요인으로써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들이 누려온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반성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어느 시대나 보통 사람들이 정치와 경제를 이야기하고 정치가들이 일반인을 위한 정치와 경제를 외치는 모습은 그 사회의 상식이 실종됐다는 반증이다. 사람들의 입에서 살벌한 정치와 경제만 쏟아져 나오고 시와 노래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 가슴은 이미 병들어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민주사회의 완성을 향해 가고 있다. 공정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위해 우리 모두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판단해야 한다. 소유와 소비 지향적 삶의 방식에 집착해 것이 전부인 것처럼 안주하면 그 웅덩이에 갇혀 자기 빛깔도 드러내지 못하는 허망한 인생으로 끝날 것이다. 그릇된 세상 흐름대로 따르지 말고 조촐한 삶 속에서 욕망을 채워가는 삶이 아니라 의미를 채워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춘래불춘래(春來不春來)’, 봄이 되었는데 자연이 베푸는 아름다운 향연을 즐기지 못한다면 정말로 쓸쓸하고 외로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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