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진 한남대 총동창회장, 전 대신고 교장

[금강일보] 가정의 달 5월은 좋은 계절이다. 지역마다 봄꽃 축제가 펼쳐지고, 각종 전시회와 음악회가 열려 가는 곳마다 상춘인파와 관람객이 넘쳐난다. 손잡고 나들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가벼운 발걸음과 미소 가득한 얼굴에서 삶의 활력이 느껴진다.
이은봉 시인(대전문학관장)의 시화전 ‘초록잎새들’이 세종호수공원에서 12일까지 열린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모처럼 전시회도 구경하고 축하할 겸 방문하자고 약속한 몇 사람이 모였다. 세종컨벤션센터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세호교를 건너 송담만리전시관으로 오라는 연락이 왔다. 주차를 한 뒤 우리는 중앙광장을 향해 걸었다.
세종호수공원은 20만 평이 넘고, 호수 면적도 10만 평이나 된다. 인공호수 안에는 다양한 문화공연과 생태체험이 가능한 5개의 인공 섬이 있고, 수변 경관을 따라 산책로와 자전거도로(도 있다. 신도시의 깨끗함과 수려함이 돋보이지만, 아직은 주변에 있는 나무들이 크게 자라지 못해 다소 황락(荒落)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소나무 숲길을 지나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앞에 보이는 관리센터로 뛰어들어 비를 피했다. 비를 맞으며 넓은 호수광장을 가로질러 건너편에 자리 잡은 전시관까지 갈 수가 없었다. 난감해하는 우리 눈에 우산이 가득 꽂혀 있는 우산꽂이가 보였다. ‘양심 우산’이라고 씌어 있었고, 밑에는 작은 글씨로 ‘필요한 분은 사용한 뒤 제자리에 놓아 달라’는 당부의 글도 보였다. 다행이었다. 우산을 펼쳐보니 고장 난 곳 없이 비를 가릴 수 있어 안도의 숨을 쉬었다. 우산을 펼쳐든 우리 일행은 환하게 웃었다. ‘양심 우산’이 없었다면 주차장에 세워둔 차로 돌아갈 수도 없고, 전시회장으로 향하기도 어려워 비가 그치기만을 마냥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우산을 펼쳐 들고 전시관으로 향했다. 전시물은 시인이 학교에 재직하는 동안 시화전에 출품했던 작품들을 모아둔 것이란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각종 행사가 취소되면서 세종호수공원 전시관도 폐쇄됐다가 거리두기가 1.5단계로 완화되며 봄기운을 따라 호수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늘자 세종시의 제안으로 방문객을 위해 시화전을 열게 됐다고 한다. 새봄을 맞아 자연에서 싹트는 생명과 인간을 대조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바른 삶인지 질문하는 시들로 시화전을 구성했다는 설명을 덧붙여줬다.
작품을 감상한 뒤 전시장을 나와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엔 비가 그치고 푸른 하늘이 고개를 내밀었다. 우리는 관리센터 우산꽂이에 ‘양심 우산’을 꽂으며 방문객 편의를 위해 우산을 준비해 둔 시의 배려에 깊은 감사를 표했다. ‘양심 우산’이 자리를 지키면서 이렇게 사랑받는 것은 빌려 쓴 물건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 사람들 덕분이다. 도덕적으로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진 사람이 많아 우리 사회가 유지되고 있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지난 4일부터 국회에선 장관과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그동안 자기 분야에서 일가견을 이루고 큰 업적을 남긴 인물들임엔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데 청문위원들은 후보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도덕성과 각종 의혹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고성이 오갔고, 준법의식이 결여된 후보자도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공원을 찾는 소시민들도 ‘양심 우산’을 사용한 뒤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데 나라를 이끌어나갈 지도자들이 청문회장에서 “부끄럽다”, “사려 깊지 못했다”, “죄송스럽다”라는 말을 반복한다면, 공직자로서 많은 국민의 박수를 받기에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양심 우산’을 준비하며 내방객의 편의성을 생각한 세종시의 자치행정이 깨끗하면서도 친절한 인상을 심어줬고, ‘양심 우산’ 제도가 잘 운영하도록 하는 선진적인 시민의식도 칭찬받을 만한 일이라고 우리 일행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이처럼 우리 정치지도자들도 높은 도덕성과 고결한 인품으로 박수와 축하를 받으며 인사 검증을 통과하는 날이 오길 고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