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금강일보] 자카르타에서 남쪽으로 180㎞쯤 떨어진 서(西) 자바의 수도 반둥은 인구 약 150만 명이 사는 인도네시아의 제3의 도시이다. 해발 700m에 있는 반둥은 네덜란드가 식민 통치하던 1810년 피서지와 휴양지로 건설한 도시인데, 열대지방인 인도네시아에서 연평균 22.3℃의 쾌적한 기후와 아름다운 풍광에 둘러싸여 있다. 넓은 가로수길과 서양식 건물이 즐비한 반둥은 현대적인 도시로서 ‘자바섬의 파리’라고 불렸는데, 독립 후에도 인도네시아의 부유층들은 이곳에 거주하거나 별장을 두었다.
반둥은 1955년 4월 당시 수카르노 대통령과 인도 네루 수상이 중심이 되어 제1회 아시아·아프리카 29개국이 경제와 문화협력, 인권 및 민족자결, 종속 민족문제, 세계 평화 등을 토의한 비동맹 중립국회의 일명 ‘아시아·아프리카 회의’를 계기로 제3세력이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는데, 1985년에 반둥회의 30주년을 기념하여 같은 장소에서 또다시 회의를 개최할 때는 아시아·아프리카 지역 83개국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까지 참석하여 새 반둥선언(New Bandung Declaration)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또, 2015년에는 반둥 회의 60주년을 기념하여 다시 반둥에서 개최되었는데,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참석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반둥회의를 주도하고 국제회의가 열린 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네덜란드가 반둥을 피서지·휴양지로 개발하게 된 것은 이곳의 대표적인 활화산인 땅꾸반 쁘라후(Tangkuban Perahu)의 영향이 큰데, 반둥 시내에서 약 26㎞ 떨어진 땅꾸반 쁘라후란 반둥 지역의 옛 순다어로 ‘뒤집힌 배’(Tangkuban(뒤집힌)+ Perahu(배)‘라고 한다.
마치 배를 뒤로 뒤집어 놓은 것 같은 모양인 화산은 선사시대에 큰 폭발로 생긴 이래 1829년, 1846년, 1910년, 1926년에도 대폭발이 있었다. 산 정상은 해발 2096m이지만, 일반인에게 공개된 곳은 해발 1830m 화산 분화구까지이다. 거대한 분화구가 있는 곳까지 차를 타고 올라갈 수 있지만, 아스팔트가 포장된 산길이지만 워낙 가파르고 도로가 비좁아서 반둥에서 정상까지 산길로 약 2시간 반가량 걸린다. 주차장으로 들어가 전 입장료를 받는데, 내국인은 무료이지만, 외국인에게는 2만 루피아를 받는다. 인도네시아의 화폐단위는 루피아(Rupia)인데, 1달러에 1만 루피아이고, 원화와의 환율은 100루피아 대 7.87원의 비율이다.
화산 분화구 주변에는 빈 둘러 통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었고, 울타리를 따라 원주민들이 사는 판잣집들이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이곳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기념품을 팔기도 하고, 숙박과 음식점을 하는데,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이곳에서 초등학교에 다녔다고도 한다. 재임 때 오바마 대통령은 반둥회의에 참석했을 때, 이곳을 찾아와서 자신이 어렸을 적에 먹었던 인도네시아식 볶음밥을 먹었다고 한다.
화산 열기가 뿜어져 올라오는 분화구 3개는 약 390만 평 정도라고 하는데, 분출되는 유황 가스로 개방된 지역은 110만 평 정도로서 분화구까지 직접 내려갈 수 있는 좁은 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화산 분화구에서 오른쪽 산골짜기로 약 20분쯤 내려가면 계곡을 따라서 화산에서 분출된 용암이 흐르며, 수많은 작은 분화구에서 끊임없이 분출되는 수증기를 볼 수 있다. 2000년 가을 처음 찾아갔을 때는 용암이 시멘트반죽 끓듯이 부글거리더니, 지금은 점점 식어가는지 군데군데 녹조가 보이기도 했다. 또, 현지인들은 분화구 주변의 식은 화산재를 짊어지고 올라와서 상품으로 파는 것이 하나의 직업이 되었다.
한편, 분화구 반대쪽으로 오솔길을 따라 계곡을 내려가면 분출된 용암이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윗부분의 용암은 뜨거워서 접근할 수 없다. 그런데, 이곳에는 유일한 매점에서 용암에 약 10분쯤 달걀을 담가서 삶아 1개에 우리 돈 500원씩 받는다. 물가수준이 우리의 1/10에 불과한 인도네시아의 가격을 생각하면 꽤 비싼 것이 아닐 수 없다. 분출된 용암이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면서 군데군데 작은 웅덩이를 이루는데, 곳곳에 발을 담그는 여행객들이 즐비하다. 우리도 온천수에 여행의 피로도 풀고, 무좀을 없앤다고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용암에 삶아진 달걀을 먹기도 했다.
이곳에서 다시 산 정상으로 올라가지 않고 산 중턱을 가로지르는 산길을 따라가면 화산 분화구로 올라가는 도로와 만나게 되는데, 하늘을 볼 수 없을 만큼 우거진 밀림을 약 30분쯤 걸어가야 한다. 그 오솔길 군데군데에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작은 매점들이 나무로 만든 갖가지 공예품을 팔고 있다.
땅꾸반 쁘라후에서 약 7㎞쯤 내려오는 산 중턱에 찌아터 스파 리조트(Ciater Spa Resort)가 있는데, 반둥 시내에서 약 37㎞쯤 떨어진 이곳은 반둥을 찾는 여행객은 물론 유황 온천욕을 하려고 사시사철 국내외 여행객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이곳은 인도네시아 전통가옥으로 만든 방갈로(bungalow)가 관광객들의 숙박 장소로서 종합리조트로서 입구에서 리조트 입장료를 받고, 각 시설을 이용할 때 시설 이용료를 받는다.
리조트 안에는 온천공원(Sari Ater)과 폭포에서 흘러내리는 용암수를 이용한 따뜻한 노천 온천탕이 있다. 노천 온천탕은 옷을 입은 채 온천에 들어갈 수 있는데, 입욕료 5만 루피아를 받는다. 우리 돈으로 약 5000원이니 인도네시아 수준으로는 약간 비싼 가격이다. 숙박객들은 각각의 방갈로에 노천탕이 있어서 국내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아늑함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도시 전체가 진한 유황 냄새와 분출되는 용암의 수증기가 자욱한 타이베이의 베이터우(北投) 온천이나 큐슈의 벳푸(別府) 온천, 나가사키 시마바라의 운젠(雲仙) 지옥온천 등을 생각하면 많이 허전하다.
또, 반둥에서 리조트와 화산 분화구까지 찾아가는 길목에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열대과일 상점이 길게 줄지어 있는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나무와 야자잎으로 지붕을 만든 헛간 같은 가게에 야자, 바나나, 파인애플 등 열대과일을 가득 진열해 둔 상점들 모습 그것만으로도 좋은 구경거리였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