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금강일보] 규슈의 사가현 아리타 마을(有田町)은 임진왜란 때 선봉장으로 조선을 침략했던 나베시마 번(鍋島藩) 번주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 1538~1618)가 정유재란 때 조선인 도공 이삼평(李參平) 등을 강제로 끌고 와서 도자기를 만들게 했던 곳이다. 당시 일본은 도기를 만들고 있었지만, 도기를 굽는 기술이 없어서 우수한 도자기를 금은과 같은 보물로 여기고 있었다.
이삼평이 1616년 이곳 이즈미 야마(泉山)에서 도자기 원료인 질 좋은 고령토를 발견하자 산속에 아리타 마을이 생겨났고, 자기를 굽는 가마를 통해서 일본 최초로 도자기 제작에 성공했다. 일본의 자기 기술을 몇 단계 상승시킨 고열로 구운 도자기는 청나라가 아편전쟁으로 무역할 수 없어지자 1650년 네덜란드 상인들에 의해서 이곳 이마리 항을 통하여 유럽에 처음 수출되었다.

이후 일본 도자기가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아리타 마을은 일약 세계적인 도자기 생산지로 알려졌다. 사가현에는 아리타 도자기를 집단으로 전시하며,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홍보하기 위한 ‘아리타 포세린 파크(Arita Porcelain Park)’가 있다.
아리타 마을에서 약 5㎞쯤 떨어진 산속에 있는 포세린 파크는 사실 1993년 무네마사 주조(宗政酒造)회사가 아리타 도요지(陶窯地)에 설립하여 운영하는 테마파크다. JR 아리타 역에서 셔틀버스로 약 10분 정도 걸리는 포세린 파크는 주말에만 운행하기 때문에 평일에는 택시나 렌터카를 이용해야 하는 불편이 있다. 그래서 역 앞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가는 여행객이 많은데, 역 앞의 관광안내소 렌털 자전거는 일반자전거와 전동자전거 두 종류가 있다.
일반자전거는 보증금 1000엔과 대여료 500엔, 전동자전거는 보증금 1만 엔에 대여료 1000엔이다. 일반자전거로는 약 30분 정도 걸리는데, 우리는 후쿠오카부터 렌터카를 운전하여 편리하게 아리타 마을에 도착했다.

포세린 파크에 들어서면 우선 축구경기장 3~4배쯤 되어 보이는 넓은 주차장이 한눈에 들어오지만, 국내 어느 관광지를 가든 흔하게 볼 수 있는 대형버스와 소형 차량을 구분하는 주차장은 물론 주차선조차 그어놓지 않은 무성의한 풍경이었다.
테마파크의 입구 왼편에는 포세린 파크의 전체적인 배치도와 제품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큼지막하지만, 모든 것을 작고 오밀조밀하게 만드는 일본인의 성향과 달리 호젓한 산속에 주차장을 비롯한 도자기 판매점, 이국적인 유럽식 건물들이 모두 넓고 큼지막한 것이 왠지 낯설기만 하다.

포세린 파크의 입장료는 무료이고,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개장한다. 왼편으로 100m도 훨씬 넘을 것 같은 행랑(行廊) 같은 긴 단층 건물이 도자기를 생산하여 판매하는 점포들이고, 그 옆에는 레스토랑과 기념품 판매점이 있다. 반대쪽인 오른쪽 산 밑에는 지붕이 뾰족하고 지붕이 진한 색깔인 서양식 건물이 3~4채씩 들어서 있는데, 이 곳이 도자기를 직접 만들거나 구워볼 수 있는 아리타 야키 공방, 영상으로 도자기의 역사를 배워보는 VOC관, 샵 하우스 등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시설들이 있다.
그러나 포세린 파크에서 가장 관심 대상은 테마파크 가장 안쪽에 자리 잡은 베르사유궁처럼 회색빛 대리석으로 지은 독일식 건물이다. 18세기 초 유럽에서 크게 유행했던 바로크 양식으로 지은 드레스덴(Dresden)의 즈빙가(Zwinger)궁전은 1975년 드레스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아리타 도자기를 후쿠오카 박물관에 전시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궁전을 모방해서 지었다고 한다.

도자기전시관의 입장료는 500엔인데, 오후 5시까지만 개장한다. 이곳에는 에도 시대부터 메이지 시대까지 일본에서 생산한 대표적인 도자기들과 각종 명품도자기들을 상설 전시하고 있는 포세린 히스토리관이 있다. 그러나 내부에서는 일체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이 곳에서는 특별 기획전도 종종 열리고, 또 예식장으로도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도자기전시관 뒤편은 넓은 서양식 정원인데, 정원 한가운데의 분수대에서는 시원한 물을 뿜어내고, 잘 다듬어진 정원은 마치 서양의 어느 궁전에 온 느낌이 들게 한다. 그러나 숲을 자연 그대로 방임하듯 관리하는 영국식 정원과 달리 자로 잰 것처럼 깎고 자르는 프랑스식 정원의 전형적긴 모습에 단정하다는 인상보다는 일본 사무라이의 살벌함을 느꼈다.

아리타 마을의 포세린 파크는 단순히 도자기만 전시하고 파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처럼 다양하게 관심을 끌게 하는 테마파크로 개발해서 고객을 유인하는 일본인들의 상혼이 엿보이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리타 마을과 포세린 파크를 돌아보면서 느낀 점은 전통적으로 문을 숭상하고 무와 기술을 천시했던 우리는 관요 도자기를 제작하는 도공들은 향소부곡(鄕所部曲)의 천민 지역에서 살았던 천민이었다.
이들이 만든 상감청자는 도자기의 원산지 중국 송사신 서긍(徐兢)이 고려를 다녀간 뒤 고려 상감청자가 천하제일 명품이라고 칭송했지만, 이후에도 달라진 것은 전혀 없었다. 그런 인식이 조선시대까지 이어졌으니, 조선의 도공들이 제아무리 훌륭한 자기를 만들었더라도 이처럼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을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