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송인선(서양화가)?
일러스트레이션=송인선(서양화가)

[금강일보]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1935년생)이 40대 초반 왕성한 활동을 하던 시기 출연한 영화 ‘부메랑’(원제 ‘부메랑처럼’)은 기억에 오래 남는 작품이다. 알랭 들롱이 주연, 공동제작은 물론 각본에도 참여했으니 이 영화에 쏟은 관심과 열정을 짐작할 만하다. 곤경에 처한 아들을 구하기 위한 아버지의 헌신적인 희생, 자신이 쌓아올린 모든 명예와 재산을 내던지고 자식을 위해 막다른 길로 돌진하는 아버지의 맹목적인 집념을 그린다. 과거 갱단의 보스였던 알랭 들롱이 오발로 인해 경관을 살해한 아들이 처한 곤경 앞에서 다시 예전 동료들을 규합, 아들을 구하려는 무모한 시도를 펼친다. 그러나 예전 어두운 과거의 흔적이 다시 자신을 향하는 상황에 처하는 대목에서 부메랑이라는 제목을 낳았다.

부메랑은 무기나 사냥도구, 장난감으로 쓰이는데 던지면 다시 돌아오는 부메랑이 대다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상식이지만 돌아오지 않는 부메랑도 실제로 있다는 것을 새로 알게 되었다. 던진 다음 다시 돌아온다는 속성으로 인간사회 여러 현상이나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데 자주 쓰이는 부메랑이지만 돌아오지 않는 부메랑도 있다니 그 흔적과 업보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미국과 함께 영화 발상지라는 자부심이 드높은 프랑스 영화는 할리웃 영화의 어마어마한 물량 투여와 스케일과는 또 다른 측면에서 나름의 전통을 지켜온다. 권선징악의 대규모 블록버스터, 정교한 컴퓨터 그래픽 화면에 익숙한 관객들로서는 프랑스 영화가 밋밋하고 재미없다는 반응이 나올 만하다. 심리분석과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근원적인 본능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카메라 시선은 그래서 지루할 수 있다. 애정심리, 일확천금을 노리는 암흑가 인물들 그리고 우스꽝스러운 인간 욕망을 풍자하는 코미디 같은 장르에 오랜 전통을 쌓아온 프랑스 영화는 인간의 이런 잠재의식을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인간탐구라는 프랑스 예술의 맥락을 이어받는다.

영화 ‘부메랑’ 줄거리를 떠올리니 이즈음 우리 사회의 어수선한 여러 현상 특히 시계 (視界) 제로에서 맴도는 정치권의 어수선한 이합집산이 겹쳐 보인다. 과거 자신의 발언이 고스란히 되돌아와 발목을 잡히는 경우도 있지만 돌아오지 않는 부메랑에 기대어 일단 던지고 보자는 무책임한 언행들도 난무하고 있다. 정치는 다른 분야에 비해 인과(因果)의 속성이 강조된다지만 돌아오는 부메랑과 돌아오지 않는 부메랑이 온통 뒤섞여 여기저기 대기를 가르며 산만하게 날아다니는 형국이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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